[오춘호의 글로벌 Edge] '국가 리스크'에 휩싸인 화웨이

입력 2018-12-13 17:45
수정 2019-01-17 00:00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 오춘호 기자 ] 중국 시골에서 통신 케이블과 장치 등을 팔던 화웨이가 갑자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데는 해외 기업 덕이 컸다. IBM이 연구개발(R&D) 과정과 성과 평가 등을 가르쳤으며 인재 개발은 헤이그룹이 지원했다. 컨설팅 그룹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금융을 지도했고 타워스페린과 독일의 프라운호퍼도 이들을 도왔다. 2000년대 베이징 화웨이 본부에 IBM 컨설턴트가 70명이나 있은 적이 있다. 3세대(3G) 이동통신 표준을 제정할 땐 독일의 지멘스와 함께 연구소를 만들기도 했다. 줄곧 특허 분쟁을 벌인 시스코와 모토로라는 반면교사이기도 했다. 기술 창조가 아니라 습득을 통해 발전하는 추격형 경제 모델에서 성장해온 화웨이다. 이런 협력을 당연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5G에 거품 끼었다는 지적도

중국 ‘굴기의 상징’으로 돼 있는 화웨이의 5G 이동통신 장비도 외국 기업 협력이 없었으면 만들지 못했다. 지난해 화웨이가 미국 기업들에서 구매한 부품과 반도체만 100억달러(약 10조원)어치다. 중국의 미국 수입차 한 해 판매액과 맞먹는다. 퀄컴과 인텔이 5G용 반도체를 공급한다. 5G 기지국 반도체 장치도 미국 자일링스에서 지원한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아날로그디바이스도 아날로그 칩 등을 공급하고 있다. 일본 부품 기업 역시 화웨이에 각종 부품을 대고 있다. 지난해 화웨이가 일본에서 구입한 금액만 4900억엔어치다. 한국도 지난해 51억달러어치의 부품을 화웨이에 팔았다.

애플이 중국에서 스마트폰을 제조하면서 형성된 생태계와 비슷하다. 스마트폰 제조 공장이 들어오면서 세계 부품 기업과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에 몰려들었다. 다른 전자제품 제조도 마찬가지였다. 화웨이가 있는 선전은 세계의 모든 전자 부품을 쉽게 찾을 수 있는 환경으로 변했다.

화웨이의 5G 기술도 이런 분위기에서 탄생했다. 창의적인 제품 개발보다 외국 기술을 흡수하고 개량 생산에 초점을 맞춘 ‘공정 혁신’으로 이룬 결과다. 화웨이의 5G에 거품이 끼었다는 지적도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단지 제품만 순수 중국제다. ‘메이드 인 차이나’이면서 ‘브랜드 인 차이나’다. 애플 아이폰을 생산하면서 ‘브랜드 인 차이나’도 얻지 못하고 조립 인건비 2%만 챙겨온 중국으로선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싶었을 것이다. 화웨이가 세계에서 20% 이상 할인하는 저가격 정책을 펴며 통신 장비를 팔 수 있도록 중국 정부가 지원하는 것에서 이런 굴기를 감지할 수 있다.

지배구조도 고객에 확신 못 줘

이런 굴기까지는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화웨이는 중국 정부와 공산당 지령을 받는 기업으로 세계에서 인식되고 있다. 미국과 서방세계에서 화웨이를 5G의 안보상 우려와 정보 누설 등의 이유로 제재하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더구나 중국 정부가 대대적으로 화웨이를 살린다고 스마트폰 구입자에게 보조금을 내도록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직원이 가진 애플 제품을 몰수하고, 응하지 않는 종업원은 해고까지 하는 기업도 나온다. 화웨이로 인해 애플이 곤란을 겪는 지경도 아이러니다.

화웨이는 지금까지 외국 기업과 그토록 협력했으면서 정작 시장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공산당의 간섭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방세계에서 우려하는 것은 이 대목이다. 기업의 지배구조도 확신을 주지 못하는 환경이다. 고객의 가치보다 정치에 휘둘려 불신만 초래한다. 애플이 중국에서 스마트폰 조립만 하지 말고 시장경제를 제대로 심어줬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