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이 아니라 증오·혐오 대상 된 男과 女
'집단 피해의식'이 타협의 여지 없애버려
광신적 여혐·남혐 계속 부추길까 우려돼
곽금주 < 서울대 교수·심리학 >
한 30대 남성이 아무 연고도 없는 20대 여성을 칼로 무자비하게 찔러서 죽게 한, 2016년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은 여성들에게 위협적인 사건이었다. 그 남성은 정신 장애를 앓고 있었다지만 여성에 대한 혐오 범죄로 인식된 사건이다. 포스트잇으로 장식된 새로운 추모열기가 이어지면서 여자들의 ‘남혐’(남성혐오) 현상이 더욱 강해진 계기가 됐다. 이후 이런 남혐, 여혐(여성혐오)의 대치현상은 크고 작은 사건들을 쏟아내고 있다. 아직 수사 중이긴 하지만 지난달 이수역 사건의 경우 남혐·여혐 갈등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다. 전혀 모르는 남녀가 그저 남자 그리고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사소한 시비가 붙어 범죄에까지 이르게 된 사건이다.
2010년께 생겨난 일베와 남성연대에서 출발한 여혐자들은 여성에 대한 무시와 비하를 시작했다. 가부장적인 남성 위주 사회에서,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높아지면서 여성의 위상이 높아진 것에 대한 반감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여성들이 무언가 잘못을 행한 것이었는지, 그들은 여성들에 대한 불만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후 여성들도 목소리를 높이면서 이에 대한 반격을 시작했다. ‘메갈’ ‘워마드’ 같은 사이트가 생겨나고 남성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남자와 여자는 서로 호기심과 관심이 아니라 증오와 혐오의 상대가 됐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남녀는 본능적으로 서로에게 끌리는 존재다. 그래서 사랑을 나누게 되고 생존을 위해 서로 도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관점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는 것 같다. 최근 일베 사이트에서는 여자친구 모르게 여친의 은밀한 사진을 올리고 이를 평가하는 댓글들이 난무해 수사가 시작되기도 했다.
혐오란 연인 간의 애정, 인간의 본능까지 위협할 정도의 엄청난 위력을 보이는 파괴적인 감정임에 틀림없다. 혐오감은 부정적 감정 스펙트럼에서 가장 극단에 위치한다. 그 대상이 파괴되고 절멸할 때까지 지속되는 강렬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분노보다도 더 극단의 감정이다.
분노와 혐오는 다르다. 누군가에게 분노가 생길 때 상대가 사과하고 행동을 바꾸게 되면 분노는 사그라지게 된다. 그러나 혐오는 그 대상의 선천적인 특성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상대의 순간적인 행동 변화로 줄어드는 감정이 아니다. 상대 그 자체가 악의적인 개체라는 생각 때문이다. 상대를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혹은 신체적으로 파괴하고 싶다는 충동만이 강해지고 그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광신적인 의무’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런 광기는 극단적으로 살인에까지 이르게 한다.
또 혐오는 확산력이 강한 감정으로, 빠른 시간에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집단을 형성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공유하면서 집단적 피해의식은 더욱 강해지고 상대에 대한 가해 감정은 더욱 커지게 된다. 집단에 소속돼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확인함으로 인해 혐오를 표현하는 데도 더 이상 억제나 죄책감 없이 과감해진다.
상대가 비도덕적이고 악한 개체라는 것에서 비롯된 집단 피해의식은 이후의 여러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집단 구성원끼리 주고받은 의견으로부터 축적된 집단 지식은 판단 기준으로 자리 잡는다. 이해나 타협의 여지 없이 혐오감만을 불태우게 된다.
특히 일베나 워마드와 같은 파급력이 큰 인터넷 공동체에서 공유하게 되는 혐오는 각자의 감정과 행동을 정당화하기에 충분하다. 또 인터넷에서 구성된 집단이 가진 한계로, 사이트에서 자기가 옳다고 믿는 정보만을 받아들이는 확증편향으로 인한 편견이 일어나기 쉽다. 직접적 상호작용이 부족하다 보니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된다. 혐오 대상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재평가할 수 있는 기회나, 제공되는 정보 모순을 생각할 기회 자체를 스스로 아예 차단해 버리기 때문이다.
인터넷 사회가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양극화인 남녀 간 혐오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 같다. 사회가 혼란스럽고 불안정할수록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강력한 집단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는 이런 광신적 혐오를 계속 부추길 것이다. 서로 간에 처참한 상처만이 남는 ‘혐오 만연 사회’가 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