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국제평화硏, 작년 글로벌 防産시장 분석
100대 방산업체 무기 매출
3982억달러로 2.5% 증가
KAI, 신형헬기 인도 지연 여파
매출 8억6000만弗로 반토막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도 부진
무리한 방산비리 수사에 타격
정부 최저가 입찰제 부작용도
[ 김보형/박상용 기자 ] 한국 방위산업이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다. 무조건 값싼 무기만 채택하는 정부의 최저가입찰제와 지나치게 높고 까다로운 군(軍)의 성능 요구 조건 탓에 방산업체들은 신기술 개발은커녕 수익성 악화로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검찰과 감사원의 과도한 방산 비리 의혹 수사 및 감사는 방산업계는 물론 군의 사기마저 꺾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의 방산비리 수사는 정권을 넘겨 4년째 이어지고 있다.
호황 누리는 글로벌 방산업계
10일 글로벌 안보연구기관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세계 100대 방산업체의 지난해 무기 매출은 3982억달러(약 448조원)로 2016년(3886억달러)보다 2.5% 늘었다. 2014년(3798억달러) 이후 3년 연속 증가했다. 100대 방산업체의 매출은 SIPRI가 통계를 작성한 2002년(2773억달러) 이후 40% 넘게 급증했다.
미국 방산업체들은 록히드마틴(1위)과 보잉(2위) 등 42곳이 100대 업체에 이름을 올리며 전년보다 2% 늘어난 2266억달러어치의 무기를 판매했다. 42개 미국 방산업체의 무기 판매액은 100대 업체가 올린 매출의 57%에 달했다. 오드 플뢰랑 SIPRI 무기·군비지출프로그램담당 국장은 “미국 방산업체들은 미 국방부의 지속적인 무기 수요에 따른 직접적인 혜택을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2019회계연도 국방 예산은 7160억달러로 지난해보다 13% 이상 증가했다.
러시아는 영국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무기 판매국으로 떠올랐다. 알마즈안테이(10위) 등 10개 러시아 방산업체는 지난해 100대 방산업체 매출(3982억달러)의 9.5% 수준인 377억달러어치의 무기를 팔았다. 이들 러시아 방산업체의 작년 매출은 전년보다 8.5% 증가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주재하는 방위산업위원회를 분기별로 여는 러시아는 지난해 무기 수출액이 153억달러(약 17조3800억원)로 10년 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한국에서 2001년 K9 자주포를 수입한 터키 방산업체들은 지난해 매출이 24% 증가하는 등 신흥국 가운데 방위산업 성장세가 가장 가팔랐다. 터키 정부가 자국산 무기 개발을 통해 수입 무기 의존도를 낮추는 등 방위산업 육성책을 펼친 결과라고 SIPRI는 설명했다.
쪼그라드는 한국 방산업계
100대 방산업체에 포함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LIG넥스원, 대우조선해양,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4대 국내 방산기업의 지난해 매출은 55억달러(약 6조2000억원)로 전년보다 23% 감소했다. 100대 방산업체를 보유한 국가 중 감소폭이 가장 컸다. 글로벌 방산시장 점유율도 1.4%에 그쳤다.
KAI는 1년 새 방산기업 순위가 50위에서 98위로 48계단이나 추락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17억6000만달러에서 8억6000만달러로 ‘반토막’났다. 일부 대형 납품 프로젝트가 종료 단계로 접어들고, 수리온 등 신형 헬기 인도 지연 등으로 매출이 53% 급락한 탓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40위→49위)와 LIG넥스원(56위→60위), 대우조선해양(72위→85위)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국내 방산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장원준 산업연구원 방산연구부장은 “한국 방산업계가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세계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기관에 의해 또 한번 검증됐다”며 “한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성장한 것으로 분류되는 인도 일본 업체들의 매출은 증가한 것과도 비교된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한국 방산업계를 위축시킨 요인으로 정부와 군당국의 각종 규제 외에 무리한 방산 비리 수사와 감사를 거론한다. 무리한 수사로 기업들의 혁신 의지가 떨어지면서 납기 지연과 매출 감소, 이익률 급락의 부작용을 낳았다는 얘기다. 방위사업비리합동수사단(현 방위사업수사부)이 지난 4년간 방산 비리로 구속기소한 34명 중 17명(50%)이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김보형/박상용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