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에 내가 월세 들어가 살아요"…대출 막히자 등장한 변종 서비스

입력 2018-12-10 16:05
수정 2018-12-10 21:00

최근 잇따라 강화된 주택담보대출 규제의 여파로 서울 강남권 등에서 변종 대출 서비스가 속출하고 있다. 당장 아파트 입주·이주를 앞두고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없어 잔금을 납부하기 어려워진 이들이 겨냥한 중금리 대출이다. 시중은행 금리보다 두배 이상 높지만 급전이 필요한 수요가 몰리는 모양새다.

◆"내 집에 내가 월세 들어가 살아요"

10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부동산거래 플랫폼 트러스트부동산은 최근 입주예정한 집주인을 대상으로 잔금 대출을 지원하는 임대사업 서비스를 서울 주요 입지 신축 단지 네 곳을 대상으로 내놨다. 송파구 ‘헬리오시티’, 강남구 ‘래미안 루체하임’·‘래미안 블레스티지’, 동작구 ‘아크로리버하임’ 등이다.

이 서비스는 새 단지에 실거주하고 싶지만 잔금이 부족한 집주인이 대상이다. 집을 ‘반전세’ 매물로 바꿔 보증금으로 잔금을 마련하고 자기 명의의 집에 임차인으로 들어가 살게 하는 것이 골자다. 집주인이 서비스를 의뢰하면 트러스트스테이와 임대관리위탁·전세 임대차 계약을 맺는다. 이때 트러스트스테이가 집주인에게 전세보증금조로 주택 잔금 일부를 내준다. 그리고 양측이 전대차 월세 계약을 체결한다. 집주인이 트러스트부동산에 전세를 내준 집을 도로 월세로 빌려 살게 되는 셈이다.


자금 이용료는 저렴하지 않다. 트러스트 관계자에 따르면 이 상품 전월세전환율은 기본 7.9%로 정해졌다. 서비스 신청자의 상황에 따라 전환율을 6~9%로 적용한다. 전세금조로 3억원을 빌릴 경우 월세 200만원 이상을 내야한다는 얘기다. 반면 서울 일반 주택시장에선 전세보증금 3억원에 대한 월세가 120만원 수준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4~9월 기준 서울 전월세 전환율은 4.0%다. 입주물량이 많은 송파구는 3.6%로 더 낮다.

트러스트스테이는 집주인에게 내준 전세 보증금만큼 근저당을 설정하고, 월세와 함께 임대보증금의 약 2%를 취급수수료로 받는다. 사실상 제3자를 이용한 우회적 주택담보대출이지만 엄밀히 대출로 분류되지 않는다. ‘임대차는 임차인 자신의 소유물에 대해서도 성립한다’는 법 조항을 이용한 주택임대관리 상품이라서다. 트러스트 부동산 관계자는 “이용을 문의하는 이들에겐 사실상 대출을 받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며 “월세가 시중 가격보단 비싸지만 대부업체 등 사금융 이자율보다는 낮기 때문에 헬리오시티 등에서 집주인들의 문의가 여럿 왔고, 이중 일부는 이미 계약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P2P식 사채상품도 속출

압구정·반포·대치 등 서울 강남권 부동산시장에선 P2P(개인간 금융) 방식 사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자체 회원의 자금을 십시일반 모아 다른 개인에 빌려주는 식이다. 대치동 P공인 대표는 “최근 복수의 P2P 업체 종업원들이 강남권 중개업소에 자체 대출 상품 관련 안내문을 배포하고 상품 설명을 하러 돌아다녔다”며 “전세나 주택매입 자금이 급한 이들을 상대로 금리 연 10%, 취급수수료 1%를 적용해 돈을 빌려주겠다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프라이빗뱅커(PB)는 “P2P 업체 관계자가 대출이 필요한 고객을 소개해 달라며 다짜고짜 연락해와 곤란했던 적이 최근 여러 건 있었다”고 전했다. 강남권 재건축 조합 일부도 20억원~50억원 규모의 P2P 대출 제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집주인이 P2P 대출을 받은 경우엔 집을 담보로 잡힌다. 이때 이자는 연 9~15% 수준으로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3.5~4.8%선)보다 높다. 만약 이자를 90일간 갚지 못하는 등 원리금을 상환하기 힘들어질 경우 담보주택이 부동산 부실채권(NPL)으로 넘어가 자산관리회사나 채권전문업체 등에 매각될 수 있다. 반포동 H공인 관계자는 “이주를 앞둔 일부 재건축 단지의 경우엔 대출이 막혀 전세자금 등을 마련하기 힘들고, 조합원 양도 금지 조치를 적용받아 집을 팔지도 못해 이도저도 못하는 처지인 조합원들이 있다”며 “이런 경우엔 울며 겨자먹기로 P2P 등 사금융 대출을 알아본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시중에 나타난 변종 대출상품은 사실상 이자가 매우 비싼 주택담보대출”이라며 “대출규제가 정부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과도한 대출 레버리지를 비싸게 일으키는 이들을 늘리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아직 관망하는 단계다. 금융위 관계자는 “트러스트스테이 등은 기존 사금융과는 다른 새로운 형식의 대출 상품인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주의깊게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