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터뷰] "코인 퇴출한 중국은 한국서 마음껏 비즈니스…왜 우린 해외서 사업 못하나"

입력 2018-12-10 10:53
수정 2019-01-10 11:11
4차위 위원 된 표철민 체인파트너스 대표

"이대로 가면 1년 안에 국내 블록체인 기업들 전멸할 것"
디지털 자산 정의 시급… '불법'으로 분류돼 해외 사업도 불가능



“정말 답답해요. 가상화폐(암호화폐)를 전면 금지한 중국 기업들조차 한국에 와서 마음껏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 국적 회사는 암호화폐와 관련해 간단한 파생상품조차도 만들 수 없는 실정이죠.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안 됩니다. ‘해외 도박장 개설’로 해석될 여지가 있거든요. 전세계가 24시간 치열하게 경쟁하는데 왜 우리나라 기업만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난달 말 출범한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4차위) 2기 위원으로 위촉된 표철민 체인파트너스 대표(사진)는 암호화폐 열풍 이후 1년 넘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국내 현실에 대해 이같이 지적했다.

표 대표는 젊은 나이에 여러 이력을 쌓은 인물이다. 벤처기업협회 이사, 위자드웍스 대표 등을 역임했고 중소기업청 정책자문위원, 미래창조과학부 전문위원, 국회 4차산업혁명특별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창업해 대표를 맡고 있는 체인파트너스는 임직원 100명이 넘는 국내 최대 규모 블록체인 기업으로 꼽힌다.

그런 표 대표가 바라보는 국내 블록체인 산업의 미래는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글로벌 경쟁에서 이미 뒤처졌고 향후에도 앞서나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 진단했다.

표 대표는 특히 중국계 암호화폐 기업들의 약진에 주목했다. 중국 정부는 암호화폐 공개(ICO)를 전면 금지하는 등 산업을 막고 있으나 해외 무대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계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는 수개월째 글로벌 거래량 수위를 달리고 있다. 전세계 톱10 거래소 가운데 미국계 비트파이넥스를 제외하면 모두 중국계다.

중국뿐만이 아니다. 미국은 증권거래위원회(SEC) 주도로 암호화폐 산업 제도권화를 추진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암호화폐 관련 자본 유치에 박차를 가했다. 일본도 자율규제 위주로 운영하며 산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디지털 자산(표 대표는 암호화폐 대신 ‘디지털 자산’이란 용어를 쓸 것을 제안했다) 정책을 빠르게 만들어야 해요. 디지털 자산에 대한 법적 정의가 내려져 있지 않으니 암호화폐 관련 파생상품을 만들게 되면 불법이 됩니다. 우리나라 법은 ‘속인주의’(해외에서도 국내 법 적용) 원칙이 있어 해외로 나간다 해도 해결이 안 돼요.”


그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간단하다. 법적으로 디지털 자산에 대한 정의를 내려주면 된다. 지금은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는 법률상 어떠한 자산의 지위도 인정받지 못한다. 암호화폐 관련 모든 파생 상품들이 불법이 된다.

“이대로 가다간 1년 안에 우리나라 암호화폐 기업은 전멸할 겁니다. 중국은 이미 싱가포르, 몰타로 건너가 파생상품 개발을 하고 전 세계에 서비스를 하고 있어요. 국내 투기 조장을 막는 건 이해하지만 외국인 대상이나 해외 영업마저 차단하는 현실은 너무나 암담합니다.”

표 대표는 이같은 정책 미비가 기업들에만 피해를 준 건 아니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재산에도 큰 손실을 입혔다는 설명이다.

“암호화폐 시세가 1년째 하락장이에요. 가장 많은 피해를 본 나라가 어디일까요? 바로 한국입니다. 한국만 하락장에 투자할 수 있는 파생상품 자체가 없거든요. 불법이라 그렇습니다. 이렇게 보면 투자자 보호하겠다면서 정작 투자자들을 보호 못한 것이죠. 진작 암호화폐를 금융투자 상품 영역으로만 규정했어도 투자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겁니다.”

앞선 10월 체인파트너스 미디어 컨퍼런스를 연 표 대표는 “규제에 막혀 1년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호소했었다. 여전히 상황은 똑같다. 그는 “차라리 전 직원을 데리고 싱가포르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심각하게 고민해보기도 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체인파트너스는 이미 유럽연합(EU) 가입국인 몰타에서 가상 금융자산을 합법적으로 취급할 수 있는 ‘클래스4’ 자격을 취득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물론 법정화폐인 유로화까지 합법적 수신이 가능한 최상위 등급 자격이다. 기관투자자 대상 디지털 자산 수탁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사업이 없다. ‘한국 국적 기업’이어서다. 몰타에서 기관투자자 자금을 관리할 자격을 부여받았으나 정작 이와 관련된 사업을 시도하는 순간 ‘불법’이 되는 아이러니다.

표 대표는 “차마 손 놓을 순 없는 블록체인은 진흥하겠다고 하지만 암호화폐에 대해서만큼은 판단을 내리거나 언급하는 것조차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면서 “분명한 것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분리는 사실상 불가능하며 뒤처지지 않으려면 싫든 좋든 빨리 디지털 자산 정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난달 블록체인 기업 대표인 그가 4차위 위원으로 위촉돼 현장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는 것. 4차위는 10일 2기 출범을 맞아 간담회도 연다. 표 대표는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 분야의 정책적 개선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당국이 ‘디지털 자산은 이것’이라 정의만 해줘도 산업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4차위 위원이 된 만큼 거기에 일조하려 합니다. 조세 정책도 시급해요. 세금 내고 제대로 하면 됩니다. 지금은 아무 정의가 없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이렇게 가다간 디지털 자산 산업은 꽃 피워보지도 못하고 끝납니다. 국경도 없이 24시간 365일 경쟁하는 시장이에요. 하루하루가 절실합니다.”

국내 기업들은 정책 미비에 발목 잡혀 대부분의 신사업을 실행하지도 못하고 있다. 시장 상황 급변을 감안하면 손발을 묶어놓은 상황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또 있다. 전체 시장이 안 좋아 지면서 디지털 자산 전체가 ‘사기’란 식으로 매도되는 상황이 그것이다.

“분명히 미래에는 디지털 자산이 쓰이게 될 겁니다. 지금이 문제죠. 암호화폐 시장이 안 좋아지다 보니 디지털 자산 자체가 헛소리였고 사기라는 식으로 공격당하고 있어요. 하지만 디지털 자산은 돈을 더욱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가치 있는 자산입니다. 꼭 화폐 형태에만 국한되지 않아요. 부동산도 될 수 있고 주식도 될 수 있는 모든 권리가 투영된 ‘디지털 형태 자산’을 전 세계인이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는 “앞으로 나올 디지털 자산 중에는 가짜가 아니라 진짜가 될 자산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같은 자산을 만들어낼 기업, 이를테면 2005년의 구글과 같은 회사들도 존재할 것”이라며 “그런 기업들을 육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인터뷰 도중에도 표 대표의 휴대폰에는 쉴 새 없이 전화와 메시지가 쏟아졌다. 그의 말마따나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경쟁하는 블록체인 업계에서 정부의 방치 속에 100명 이상의 회사를 경영해야 하는 그의 어깨가 무거워보였다.

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san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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