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자발적 기부 늘리려면
기업들 "돈 내고 욕만 먹어" 호소…자발적 기부가 참의미
[ 이수빈 기자 ]
매년 이맘때 번화가에 가면 길거리에서 행인에게 기부를 요청하는 모금기관 관계자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일부 단체 관계자는 길을 막아서는 등 집요한 방식으로 기부를 강요해 논란이 되기도 한다. 모금단체 관계자들은 “기부액은 증가하지 않는 와중에 모금단체는 속속 생겨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빚어진 풍경”이라고 설명한다.
개인은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믿지 못하고, 기업은 기부금이 뇌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 움츠러들면서 국내 기부금 규모는 지난 2011년 이후 5년 동안 15% 늘었지만 이는 사실상 답보 상태다.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이 발표한 ‘세계 기부지수’ 한국 순위도 2012년 45위에서 올해 60위로 하락했다. 기부 문화가 더욱 성숙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부금 매년 답보 상태
한국 전체 기부금 규모는 2013년부터 12조원대에서 머물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발간한 ‘2018 기부 및 사회 이슈 트렌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전체 모금기관 모금액 약 1조4000억원 중 5700억원 정도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모금액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국내 유일한 모금 관련 법정단체다. 같은 해 월드비전이 2000억원, 유니세프와 굿네이버스, 어린이재단이 각각 1300억원가량 모금했다.
이들 모금기관은 저마다 모금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 단체가 일시후원이나 정기후원을 받는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일반 개인, 회사원, 가정, 기업 등 기부자 층을 세분화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들 단체는 매년 기부금으로 추진한 사업 성과도 발표한다. 보고서에서는 모금액이 가장 많이 쓰이는 분야가 북한·해외·기타 분야라고 분석했다. 전체 민간 기부액의 32.4%가 이 분야에 쓰였다. 지역사회(29.2%), 아동청소년(25.4%) 분야가 뒤를 이었다.
잇단 기부금 횡령에 ‘기부포비아’도
개인 기부금은 매년 소폭 늘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 기부 참여율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높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청이 집계한 기부 참여율은 2011년 36.4%에서 2017년 26.7%로 급감했다. 최근 들어서는 ‘기부포비아’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기부금을 둘러싸고 사건 사고가 잇따르면서 기부 자체에 거부감을 보이는 현상이다. 기부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 없는 ‘깜깜이 기부’가 대표적이다. 2011년 사회복지모금공동회 직원들이 성금을 술값, 노래방비 등으로 쓰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절이나 교회 등 종교단체에서 실제로 기부하지 않았는데도 가짜로 현금영수증을 발행해 사실상 세금을 탈루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영학 사건’처럼 동정을 조성한 뒤 받아낸 기부금으로 외제차를 구입하는 등 기부 제도를 악용한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국내 조세 체계가 기부금 확산을 막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기부금 공제체계가 2014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고소득자는 기부를 해도 세제혜택을 덜 보게 됐다. 기부 유인이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기업들 “돈 쓰고 욕만 먹어”
정부가 기업을 대상으로 ‘준조세’ 성격의 기부금을 사실상 강요하는 행태도 자발적인 기부 확산을 막는 요인 중 하나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이 대표적이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피해 입은 농어촌을 돕자는 취지에서 작년 4월 조성됐다. 정부는 매년 1000억원씩 기금을 걷어 총 1조원을 조성하기로 하면서 전액 기업에서 출연받기로 했다. 기금 조성은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이 맡았다.
그러나 기업들은 움츠러들어 있다. 법인당 기부금은 2012년부터 감소세다. 박근혜 정부 당시 정부 요청에 따라 기금을 냈던 기업들이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휘말리면서 뇌물로 의심받는 등 ‘돈 내고도 욕먹는’ 상황이 연출돼서다. 한 대기업 사회공헌팀 관계자는 “정부에서 기부금을 내놓으라고 강요하기보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기부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NIE 포인트
한국 기부액은 최근 수년간 정체 상태다. 기부 참여율이 정체된 이유를 토론해보자. 개인과 기업의 자발적 기부를 늘리려면 어떤 방안이 필요한지 생각해보자. 각종 기부금의 투명한 운영을 위한 방안도 토론해보자.
이수빈 한국경제신문 지식사회부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