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감 시늉만 낸 470조 초팽창 예산
민주·한국당, 2019 예산안 표결 처리
2주간 5조 깎더니 하루새 SOC 예산 등 5조 가까이 증액
1조 넘는 '깜깜이' 남북경협기금도 1000억 삭감 그쳐
여야 실세들, 지역구 챙기기 구태도 여전히 되풀이
[ 하헌형 기자 ]
여야는 올해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7일 저녁까지 470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증액 심사를 벌였다. 전날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총 5조2000억원의 예산을 감액하기로 합의했지만, 이날 5조원가량을 다시 증액 편성하면서 전체 예산안 규모는 정부안과 비슷한 수준으로 정해졌다.
SOC 등에 5兆 가까이 ‘묻지마 증액’
민주당과 한국당 등 거대 양당은 전날 정부가 편성한 내년도 예산안 470조5000억원에서 5조2000억원을 감액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정부 예산안에서 5조원가량을 깎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총액을 건드리지 않는 조건으로 야당 요구를 수용하기로 한 합의였다.
삭감액 5조2000억원에서 유류세 인하 등으로 생기는 4조원의 세입 결손을 1조8000억원어치 적자국채 발행으로 일부 보전하고, 지출 예산을 5조원 가까이 증액하기로 사전 합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당이 중점적으로 내세운 출산 지원 관련 예산이 대거 들어가면서 감액 사업과의 바꿔치기가 이뤄졌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부 지출 규모를 지키는 선에서 증액 규모를 합의하고 이에 맞춰 증액 사업을 집어넣는 딜(거래)이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의원은 “여야 모두 가능한 한 증액을 많이 하려고 해 전체 예산 규모는 정부안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야가 증액 편성한 예산 대부분은 각 당 의원들 지역구 내 도로·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와 관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국회 상임위원회와 예결특위의 예산안 심사 단계부터 여야 실세들의 지역구 SOC 관련 예산이 끼워넣기 식으로 들어갔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 지역구인 세종시의 국립세종수목원 조성(290억원) 등이 대표적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내년도 SOC 예산을 정부안(14조7000억원)보다 2조4000억원 늘어난 17조1000억원으로 책정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 대책 회의에서 “문재인 정권 들어 TK(대구·경북), PK(부산·울산·경남), 강원 산간 지역, 충청, 호남 지역 일부의 많은 SOC 사업이 중단되고 조정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며 “지역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늘리기 차원에서 SOC 예산 대폭 증액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과거엔 지역구 민원 예산을 따내는 데 큰 관심이 없었던 수도권 의원들도 올해는 문화·체육시설 등 이른바 ‘생활 밀착형 SOC’ 관련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고 한다. 예결특위 소속의 각 당 의원 한 명이 다른 의원들의 민원을 접수해 예산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에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각 당 예결특위 간사인 조정식·장제원 의원이, 바른미래당은 예결특위 위원인 정운천 의원이 이 역할을 맡은 것으로 전해졌다.
20兆 깎겠다던 한국당, 찔끔 삭감
정치권 안팎에서는 한국당이 당초 공언한 것과 달리 내년도 정부 예산을 찔끔 삭감하는 데 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달 2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 예산안에서 총 20조원을 감액할 것이라고 밝혔다. 삭감 대상엔 일자리 예산 8조원과 남북협력기금 5000억원이 포함됐다.
하지만 한국당이 합의해준 일자리 예산 감액 액수는 6000억원으로 전체 23조5000억원의 2% 수준에 불과했다. 구체적인 사업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깜깜이 예산’ 논란이 일었던 남북협력기금은 10%(1000억원)를 깎는 데 그쳤다.
한국당 관계자는 “통상 국회에서 정부 예산안의 1% 정도를 삭감해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찔끔 삭감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또 다른 야당 관계자는 “예결특위 파행으로 예산안 심사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데다 법정 처리 시한이 다가오면서 여야 의원 모두 쟁점 사업 심사보다 지역구 예산 나눠먹기에 몰두한 측면이 있다”고 털어놨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이날 “국회법 어디에도 근거가 없는 예결특위 ‘소(小)소위원회’에서 마음대로 예산을 결정하니 지역 SOC 예산만 늘어났다”며 “그 과정에서 거대 양당 의원들끼리 서로 지역구를 챙겨주는 짬짜미가 없었겠느냐”고 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