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갈등에 발 묶인 광역교통망…수도권 147만명 "출퇴근은 지옥길"

입력 2018-12-05 17:27
표류하는 광역교통망 신설

노선·재원 분담 놓고 티격태격

용인·안양·수원·화성시 등서 앞다퉈 노선 추가 요구로
인덕원~동탄선 복선전철, 3년 지연에 노선도 구불구불

김포·인천시 사업비 분담 갈등…원당~태리 광역도로 끝내 무산
수도권서 서울 통근 1시간 넘어…OECD 평균보다 2배이상 길어


[ 양길성/이정선 기자 ]
서울과 경기·인천을 오가는 철도·버스·도로 등 수도권 광역교통망 신설이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으로 줄줄이 늦어지고 있다. 노선, 재원 분담 등을 두고 지역 이기주의가 심해서다. 주무관청인 국토교통부는 강제 조정 권한이 없어 사실상 광역교통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역철도 등 신설 줄줄이 표류

5일 서울시에 따르면 강서구 방화동에서 인천 검단신도시와 경기 김포한강신도시로 이어지는 지하철 5호선 연장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5호선 방화차량기지와 인근 건설폐기물처리장을 한꺼번에 옮기려는 서울시 계획에 인천시, 김포시가 반발하고 있어서다. 서울시는 이른바 ‘혐오시설’인 건설폐기물처리장을 이전 대상에 끼워넣으려 하고 인천시 등은 선호시설만 받으려 하고 있다.

인덕원~동탄선 복선전철(경기 안양~화성)은 2015년 경기 용인·안양·수원·화성시가 앞다퉈 추가 역 신설을 요구하면서 사업이 3년가량 지연됐다. 지역구 국회의원까지 나서 4개 역 신설을 관철한 탓에 전철 노선은 버스처럼 구불구불해졌다. 배차시간이 길어진 데다 굴곡이 워낙 심해 ‘거북철’이 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인천 검단과 김포 일대를 지나는 ‘원당~태리 광역도로’는 김포시와 인천시 간 사업비 분담 비율을 두고 수년간 갈등을 빚다가 김포시가 예산 투입을 거부하면서 지난해 무산됐다.


광역버스의 이해관계는 더 복잡하다. 운수사업법에 따라 해당 시·도지사가 모두 동의해야 광역버스 운행이 가능해서다. 서울시는 ‘버스총량제’까지 도입해 수도권 외곽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버스 확충을 막고 있다. 서울시는 버스 적자를 보전해주는 ‘준공영제’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로 통근하는 경기도민에게 서울시 예산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늘어나는 도로 혼잡도도 서울시에는 부담이다. 서울시는 이 같은 이유로 광역버스 노선을 폐선, 형간전환을 통해 2005년 26개에서 지난해 10개로 대폭 줄였다.

모창환 한국교통연구원 광역교통행정연구팀장은 “서울시민을 우선 고려하는 서울시와 경기버스 운영 외에 관심이 없는 경기도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통근자들이 교통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고 지적했다.

출퇴근 시간 OECD 최고

피해는 고스란히 수도권 통근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경기 수원에 거주하던 성상묵 씨(27)는 “서울로 출퇴근하는 데 하루 3시간이 걸리는데 그마저도 사당역으로 가는 광역버스가 한 대뿐이어서 수십 명의 승객이 끼여 탄다”며 “도저히 출퇴근할 수 없다고 판단해 두 달 전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55만원을 주고 서울에 작은 원룸을 얻었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경기·인천에서 서울로 통근하는 사람은 하루 147만 명에 이른다. 수도권 거주 근로자 중 21.2%는 통근시간이 1시간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6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출퇴근 시간은 58분으로 평균(28분)의 2배가량이다. 광역교통망 구축이 늦어지면서 서울 교통혼잡비용은 2015년 기준 9조4353억원에 달했다. 최근 10년간 37% 증가한 수치다.

전문가들은 지자체 간 협의를 어렵게 하는 ‘칸막이’식 교통행정 체계가 광역교통망 구축을 늦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자체는 행정구역 내 현안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지자체 경계를 넘나드는 광역교통 체계에서 사각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기도 교통정책과 관계자는 “반기마다 광역교통계획 추진 현황을 국토부에 보고하고 있지만 교통망 건설이 늦어져도 처벌 조항이 없어 사업 추진이 지연되는 일이 많다”고 지적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학과 교수는 “강력한 법적 권한과 자체 인사·재정권을 쥔 광역교통행정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길성/이정선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