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수년간 흘린 피땀이 한방에"…中 기술 도둑질에 전자업계 휘청

입력 2018-11-30 09:23
수정 2018-11-30 09:25
중국, 국내 전자업계 핵심기술 유출 시도 잦아
고액 연봉 미끼로 이직과 동시에 기술 유출 제안
"기술 유출, 국가로 피해 확대…특단 대책 시급"




핵심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되는 경우가 빈번해지면서 국내 전자업계의 고민이 깊다. 기술 유출은 산업 경쟁력을 한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만큼 유출 사범을 엄벌하고,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30일 국정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해외로 유출된 핵심 산업 기술 152건의 약 60%인 90건이 중국으로 넘어갔다. 유출 분야별로는 전기전자 분야가 57건으로 가장 많았고 기계 분야가 31건, 조선 분야가 22건으로 뒤를 이었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유출된 기술의 70~80%는 중국으로 넘어간다고 보면 된다. 중국업체들이 전세계적으로 1등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국내 전자업계의 핵심기술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업체들의 주된 표적은 삼성, LG 등 국내 대기업의 협력업체들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협력업체들은 대기업보다 보안솔루션 및 기술인력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다. 중국업체들은 이점을 악용해 협력업체 직원에게 접근, 핵심 기술을 빼돌리는 조건으로 거액의 연봉을 제시한다. 기술과 인력을 동시에 빼가는 셈이다.

지난 9월 이같은 방식의 유출 사례가 검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대기업 협력사 연구원인 A씨 등 3명은 플렉시블 OLED 패널 공정장비 제작 기술과 경험이 없는 중국의 B업체에서 2배 이상의 연봉과 한국지사장 자리 등을 제안 받으며 스마트폰 등에 사용되는 소형 패널을 정밀하게 절삭하는 공정장비의 설계도면 제공을 요구받았다. 이들은 해당 설계도면의 전체 파일을 무단 반출한 뒤 B업체에 제공했다.

반대로 협력사들이 먼저 중국업체를 찾는 경우도 있다. 삼성전자 협력사 직원 10여명은 매출이 떨어지자, 중국 업체들에 먼저 접근해 돈을 받고 국가핵심기술을 판 혐의로 29일 재판에 넘겨졌다. 이 기술개발에는 무려 6년간 38명의 엔지니어들과 1500억원의 연구비가 투입됐으나, 검거된 일당은 155억원을 받고 팔아넘긴 것으로 조사됐다.

기술 유출을 당한 업체는 무지막지한 타격을 입는다. 기술을 훔친 중국 경쟁업체들이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도 곧장 세계 최고 품질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양측의 기술 수준이 같아지면서 뺏긴 쪽의 피해는 금전적으로 수천억, 수조원에 이를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올레드 기술력의 경우 중국이 우리나라보다 3년 이상 뒤처진 상태"라며 "그러나 기술 유출이 지속된다면 LCD(액정표시장치)에 이어 올레드 시장에서도 한순간에 중국에 따라잡힐 수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중국은 해외에서 첨단 기술을 빼내면서 우리나라와의 기술 격차를 줄이고 있다. 지난 8월 현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120개 국가전략기술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중 기술 수준 격차는 2014년 1.4년에서 2016년 1.0년으로 줄어들었다. 산업별 기술 격차도 대부분 감소했다. IT(정보기술) 분야인 전자·정보·통신 산업의 기술 격차는 0.3년, 의료는 0.5년, 바이오는 0.2년 줄었다.

전자업계는 핵심 기술을 빼가기 위한 중국 업체들의 유출 시도를 심각한 사안으로 보고 대응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정부에게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도 기술유출을 막기 위해 각종 지원 방안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관련 부처가 다양한데다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 생색내기에 그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관련 예산은 2016년 약 15억 원에서 지난해 12억5000만 원으로 줄었고, 올해도 예산이 동결됐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 유출로 인해 발생한 해당업체의 막대한 피해는 국가적 손실로 이어진다"며 "정부는 관련 예산을 늘리고 조직을 확대해야 하며 유출 예방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진욱 한경닷컴 기자 showg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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