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티 소속사’는 어떻게 3년 만에 年매출 200억을 뚫었나

입력 2018-11-30 08:14
[인터뷰] MCN 스타트업 샌드박스네트워크 이필성 대표
“크리에이터가 공동창업자인 유일한 기업… 광고 이어 IP·커머스사업 강화”


도티, 잠뜰, 풍월량, 겜브링, 떵개떵, 엠브로, 장삐쭈, 라온, 띠미, 츄팝…. 유튜브 세상에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유명 크리에이터(동영상 창작자)들을 앞세워 고속 성장을 이어가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있다. 2015년 설립된 멀티채널네트워크(MCN) 기업 샌드박스네트워크다.

MCN은 쉽게 말해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소속사’라 할 수 있다. 전속 계약을 맺고 활동 전반을 지원하는 대신 수익을 나눠 갖는다. 샌드박스네트워크는 어린이, 게임, 먹방, 음악 등 다양한 영역에서 200팀 이상의 크리에이터를 거느리고 있다. 최근 프로게임단을 창단해 e스포츠 사업에 진출하는 한편 영상물 자체 제작, 지식재산권(IP) 판매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서울 삼성동 본사에서 만난 이필성 대표(32)는 “샌드박스네트워크는 Z세대를 위한 엔터테인먼트 회사”라고 소개했다.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태어난 Z세대는 흔히 ‘TV보다 스마트폰을 더 많이 보는’ 세대로 불리는데, 이들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에 강점을 지닌 회사를 목표로 한다는 설명이다.

많은 스타트업이 창업 초기 매출이 없어 고생하는 것과 달리 이 회사는 크리에이터들이 벌어오는 ‘광고수익’에 힘입어 몸집을 빠르게 불렸다. 샌드박스네트워크 매출은 설립 첫해 9억원에서 2016년 58억원, 2017년 140억원으로 늘었고 올해는 2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다만 “당분간 콘텐츠 투자에 집중할 생각이어서 손익분기점 달성까진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올 5월 게임업체 넵튠에서 100억원을 투자받는 등 지금까지 150억원의 누적 투자를 유치했다.

2010년대 들어 동영상 콘텐츠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미국에 이어 한국에서도 MCN 창업 열풍이 뜨거웠다. 국내 MCN 업계 ‘서열’을 보면 CJ ENM 계열의 다이아TV가 1위,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샌드박스네트워크가 2위이고 여러 중견·신생 기업이 뒤따르는 구도다. 매니지먼트 대신 영상 제작에 주력하거나, 화장품 같은 특정 영역에만 집중하는 곳이 생겨나는 등 시장이 분화하면서 200개 안팎의 업체가 운영 중인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콜랩이 지난해 한국지사를 세우는 등 외국계 기업의 상륙도 이어졌다.

MCN 기업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는 조회수다. 샌드박스네트워크를 통해 올라간 동영상의 전체 조회수는 2015년 6억2538만건, 2016년 33억3552만건, 2017년 76억5265만건으로 가파르게 뛰었다.

이 대표는 샌드박스네트워크만의 강점으로 “모든 것이 크리에이터 중심이라는 것”을 꼽았다. 그는 “샌드박스네트워크는 국내 MCN 업계에서 정상급 크리에이터가 직접 창업한 유일한 기업”이라며 “크리에이터가 성장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게 회사가 잘 되는 길이라는 철학이 모든 의사결정에 녹아들어 있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크리에이터 창업자’는 도티(나희선 이사)다. 도티는 이 대표와 함께 샌드박스네트워크의 공동창업자이자 최고콘텐츠책임자(CCO)로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부산 출신인 이 대표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구글코리아에서 4년 동안 일하다 ‘대학 수시입학 동기’인 도티와 샌드박스네트워크를 차렸다.

“구글에서 첫 2년은 광고 영업, 나머지 2년은 광고 제휴를 맡았습니다. 온라인 광고시장 흐름이 어떤지, 콘텐츠 제작자나 기업들은 어떻게 돈을 버는지 이해하게 됐어요.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이 새로운 미디어로서 많은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향력이 커지면 결국 광고가 붙을 테고, ‘되는 사업’이라 판단했죠.”

그가 창업을 고민할 즈음 도티 역시 크리에이터가 체계적으로 지원받으며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다는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이 대표는 경영, 도티는 콘텐츠에 집중하기로 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창업 당시 20만명 남짓이던 도티의 구독자 수는 200만명을 넘겼다.

연예기획사와 연예인은 7년 단위 표준계약서에 따라 장기 계약을 맺지만, MCN업체와 크리에이터는 통상 1년 단위로 계약한다. 이 대표는 “연습생 때부터 합숙시키며 교육하는 연예기획사와 달리 MCN 업체와 크리에이터는 다소 느슨한 관계”라며 “크리에이터가 자신의 재능을 바탕으로 좋은 콘텐츠를 제작하도록 지원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고 강조했다.

“크리에이터들이 사실 방송하면서 많이 힘들어 해요. 우리가 ‘이렇게 저렇게 만들라’ 해서 절대 좋은 콘텐츠가 나오지 않습니다. 추상적인 얘기지만, 크리에이터와 진심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돕는 게 결국 가장 큰 자산이 됩니다.”

샌드박스네트워크 매출의 70% 이상은 광고에서 나오고 있다. 유튜브에서 얻는 광고수익과 일명 ‘브랜드 콘텐츠’라 부르는 기업 간접광고(PPL)가 주된 수입원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콘텐츠회사가 한 가지 수익모델에 의존하면 어려워진다”며 “광고를 기반으로 하되 매출 구조를 다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의욕적으로 강화하는 영역은 IP 사업이다. 크리에이터의 인기를 활용한 굿즈(캐릭터상품)와 2차 창작물, 출판물, 공연 티켓 등을 가리킨다. 크리에이터의 영상물을 공급해 달라는 방송사들의 요구가 늘면서 자체 제작 프로그램 납품도 강화하는 추세다.

이 대표는 “크리에이터가 소개하는 상품을 홈쇼핑처럼 바로 구매하도록 하는 커머스(상거래) 사업이나 Z세대를 공략하려는 기업들의 디지털 마케팅을 돕는 컨설팅 사업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