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의 '작심비판'
"최저임금·週 52시간 충격으로 벤처 경영환경 날마다 악화 체감
제대로 된 성장 로드맵도 안보여"
[ 김기만 기자 ]
“조선과 자동차 업종에서 시작된 위기가 반도체를 포함한 정보기술(IT)업계로 넘어왔다. 이대로 가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공포가 벤처업계를 덮치고 있다.”
안건준 벤처기업협회 회장(사진)은 29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위원인 안 회장은 그동안 정부 정책 비판을 자제해왔다.
그는 “최근 만나는 벤처기업인마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충격을 걱정하고 있어 협회도 말을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고 태도를 바꾼 이유를 설명했다. 안 회장은 “인건비 상승과 생산성 하락으로 인한 협력업체의 부담이 중견 벤처기업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며 “현장에 있는 벤처기업인들은 경영 환경이 날마다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협력업체가 어려움에 빠지면서 공포가 빠르게 전이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벤처기업협회가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문제 등 정부의 노동 정책과 관련해 비판적인 견해를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규제 완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실망스럽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출범한 지 400일이 넘었지만 속시원하게 기업의 애로를 해결해준 게 없다”고 지적했다. 카풀서비스 등이 여전히 규제에 막혀 있다는 점 등을 염두에 둔 말이다.
안 회장은 정부가 성장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는지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6개월 됐지만 제대로 된 성장 로드맵은 나오지 않고 있다”며 “미래에 대한 비전이 보이지 않는 것이 벤처기업인들을 더 불안하게 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성장보다는 분배에 치중된 경제 정책의 우선순위가 많은 일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기업 정책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경제 생태계가 대기업 중심으로 이뤄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정부가 재벌개혁에만 함몰돼 생태계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실은 어렵고, 미래는 보이지 않고 정부는 도대체 뭐하는지 모르겠다"
"4차산업혁명委 400일 넘었지만 규제완화 등 기업 애로 해결 못해"
“정부가 벤처기업인들에게 희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처한 위기 상황을 언제까지 감내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은 벤처기업인들 사이에서 오간 얘기를 이렇게 요약했다. 현실은 어렵고, 미래는 보이지 않고, 정부는 뭐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었다.
벤처를 위한 규제 완화를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벤처기업인들의 불만을 증폭시키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카풀업계와 택시업계처럼 이해집단이 상충하는 현안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중재하지 않으면 쉽게 해결할 수 없다”며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국회에서 카풀 서비스 근거 조항마저 삭제하자는 논의가 이뤄지는 것은 규제개혁에서 역주행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역대 모든 정부마다 규제개혁을 이야기했지만 규제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기만 했다”고도 했다.
벤처기업협회는 최근 한 달 새 정부의 규제 정책을 비판하는 3개의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달 24일 ‘O2O(온·오프라인 연계) 서비스분야 신산업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낸 데 이어 지난 19일에는 ‘카풀을 포함한 공유경제 서비스에 대한 규제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26일 국회에서 논의 중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저해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도 공개했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소속인 안 회장은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인 양질의 일자리는 일정 규모 이상의 제조 벤처기업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이 창업 지원 자금을 비행기에서 뿌린다고 비유한다면 한국은 헬리콥터에서 뿌리는 수준이라도 돼야 한다”며 “다만 창업 지원과는 별개로 기존 벤처기업에 대한 성장 정책도 함께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벤처지원 정책이 창업 기업에만 쏠려 있다는 지적이다. 벤처 정책이 초기 창업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사업 규모를 키워나가야 하는 중견 벤처기업은 소외당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은 제조업을 근간으로 정보통신기술(ICT)이 융합되는 게 핵심”이라며 “제조업은 창업 이후 성과를 내기까지 긴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안 회장은 이어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 등에서 지원하는 90조원의 국가 총보증 규모에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보증 비율이 70%에 달하는 등 쏠림 현상이 있다”며 “대규모 투자와 사업 확장 등 ‘스케일업(scale up)’이 필요한 벤처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은 피부로 느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기만 기자 m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