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프라이버시 경제
안드레아스 와이겐드 지음 / 홍지영 옮김
사계절 / 440쪽│2만2000원
나도 모르게 퍼지는 개인정보, 지키기보다 내주고 대가 얻어야
내 위치·목적지 알리는 대신 구글에서 최적경로 얻는 원리
데이터 알 권리·이용할 권리 등 투명성·주체성 원칙 있을 때 가능
프라이버시 '발상의 전환' 필요…개인이 데이터 자발적 활용해야
[ 윤정현 기자 ]
사람들은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나이와 학교, 직업과 사는 곳, 단골집 등을 공개한다. 취향이나 정체성 같은 사적인 영역까지 거리낌 없이 공유한다. 새로운 사이트에 가입하거나 본인 인증을 할 때 우리는 쉽게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한다. 체크해야 할 항목이 여러 개일 때는 ‘일괄 동의’ 버튼을 눌러 버린다. 간편함이 가져다주는 혜택이 정보 유출의 공포를 잊게 한다. 구글 지도에서 최적 경로를 얻기 위해서도 현재 나의 위치와 목적지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는 이미 8년 전 “프라이버시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무의식중에 축적해가는 데이터든, 필요에 따라 선택한 데이터든 우리가 생성한 데이터가 ‘나조차 몰랐던 나’를 만들고 있다. 《포스트 프라이버시 경제》는 어차피 공유해야 하는 데이터라면 두려워하고 막을 게 아니라 “제공한 만큼 혜택을 누려라”라고 제안한다.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게 아니라 활용해야 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스탠퍼드소셜데이터연구소 창립자이자 대표인 저자는 자신의 선호를 드러내고 필요한 것을 밝혀 이왕이면 최적화된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2006년부터 예정된 모든 강의 일정과 예약 항공권 내역을 개인 웹사이트에 공개해 왔다. 저자는 “공유해서 얻을 수 있는 실질적 가치가 내포한 위험보다 크다고 믿기 때문”이라며 “데이터는 이전까지 없던 가치를 새로 발견하고 그것을 가장 잘 이용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서술한다. 알리바바, 골드만삭스, 베스트바이 등을 고객사로 뒀던 저자는 기업들이 어떻게 우리가 생성한 데이터를 제품과 서비스로 변환하는지를 알려준다. 더불어 우리를 대상으로 수행 중인 다양한 실험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 기업과 데이터 생성자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데이터를 악용하지 않도록 통제할 수단을 찾는 것이다. 책에서는 두 주체 간 힘의 균형을 맞춰갈 방법으로 투명성과 주체성을 제시한다.
투명성은 자신의 데이터를 알 권리를 의미한다. 고객상담센터에서 상담원과 연결 전 나오는 “통화 내용은 품질 보증 목적으로 녹음될 수 있습니다”라는 안내 멘트를 예로 든다. 상담원과 통화하고 싶으면 회사가 내건 ‘녹음’이라는 조건은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필요할 때 소비자도 그 녹음 내용을 확보할 수 있을까. 한쪽만 접근할 수 있는 데이터를 통해서는 품질 보증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데이터 대칭성의 원칙은 돈을 지급하는 고객에게도 녹음 파일에 접근할 권리를 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아마존은 투명성을 고객 경험 설계에 반영하고 있다. 과거에 구입했던 물건을 사려고 하면 “정말로 구매를 원하십니까”라고 확인하고 “이 품목을 2013년 12월17일에 구매했습니다”라고 안내한다. 고객의 후회를 줄이기 위해 구매 내역 데이터를 먼저 점검하고 보여주는 것이다.
주체성은 자신의 데이터를 스스로 이용할 권리를 뜻한다. 데이터를 수정하고 어느 정도 수준까지 공개할지 결정하는 것을 포함해 제품과 서비스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권력의 중심에는 정보가 있지만 데이터는 인질이 아니다. 데이터를 생성하고 유통하는 방식에 있어서 우리가 발언권을 갖고 스스로 사용 조건을 정할 수 있어야 한다.
책은 프라이버시에 대한 낡은 개념을 벗고 발상의 전환을 하라고 촉구한다. 기업이 고객에게 무엇을 구매할지 정해주던 시절은 가고 기업이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고객이 정해주는 시대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순응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데이터 시대를 주도해나갈 개인의 변화는 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람을 위한 데이터’에 대해 저자는 말한다. “대부분의 신기술이 그러하듯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것은 기계가 아니다. 혁명은 사람들이 기계를 사용하고, 기대치를 조정하고, 그에 대한 대응으로 사회규범을 바꿀 때 찾아온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