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 6일 만에 또 깃발 들어
대전지검 천안지청 앞에서 "노조파괴 끝장내자" 가두 시위
親노조 정책, 공권력 공백 초래
시위·진압 시민피해 최소화 지시
경찰, 적극적 시위 진압 불가능
이해찬 "경찰에게도 큰 책임있다"
유성기업 폭행 뒤늦게 조사
[ 이수빈/강태우 기자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연맹은 28일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 앞에서 유성기업 회장의 처벌을 촉구하는 깃발을 들었다. 유성기업의 김모 노무담당 상무(49)를 집단 폭행한 지 엿새 만이다. 집회에선 폭행 사건에 대한 유감 표명은 있었지만 사과는 없었다. 정원영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세종충남지역본부 지부장은 “우리가 죽을죄를 지은 것이 아니다. 이번 일은 유감이지만 노조 탄압으로 가정을 파탄시킨 건 사측의 김 상무가 주도했다”며 “유성기업 회장과 김 상무의 노조 파괴를 끝장내지 않으면 우리가 투쟁으로 끝장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 불법에 눈감은 경찰
민주노총이 최근 각종 폭력과 불법 집회를 감행하고서도 이처럼 적반하장식의 주장을 하는 데는 공권력의 무기력한 대응이 자초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 지경인데도 경찰이 노조 집회라는 이유로 별다른 제재 없이 어물쩍 넘기는 일이 많아지면서 이런 사태까지 초래됐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과거 경찰의 인권침해 사건이 재조명되고, 불법 시위 진압 과정에서의 불상사를 형사처벌까지 하는 등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일선 경찰관은 크게 위축된 상태다.
지난 22일 민주노총 금속연맹 소속 조합원들의 김 상무 집단 폭행 현장에 있었던 최철규 유성기업 대표는 이날 경찰 조사에서 “수년간 노조원들의 폭력이 지속돼왔고 그때마다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며 “이번 기회에 제발 (민주노총의 폭력을) 근절해달라”고 진술했다.
경찰이 민주노총의 폭력·불법 행위에 눈감은 것은 유성기업 사례만이 아니다. 민주노총 노조원들이 지난달 30일 경북 김천시청에 난입해 시장실을 점거했지만 경찰이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자 김충섭 김천시장이 이달 22일께 직접 고소장을 제출하기도 했다. 지난 12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고용노동부 창원지청을 점거했을 때도 당시 고용부 측이 경찰에 세 차례나 시설보호를 요청했지만 경찰은 “비폭력 집회에 나설 수 없다”며 경찰관을 한 명도 배치하지 않았다. 13일 대검찰청을 점거 농성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에 대해서도 경찰은 간부 6명만 체포해 조사한 뒤 귀가조치했다.
정부의 친노조 정책으로 경찰 위축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경찰의 ‘흑역사’만을 부각하고 친노조 정책을 펴온 데 따른 반작용 성격이 크다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경찰의 날 기념식 축사에서 “대통령으로서 더는 공권력의 무리한 집행으로 국민과 경찰이 함께 피해자가 되는 일이 없도록 분명히 약속한다”고 선언했다. 실제 2015년 11월 민주노총의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 물대포에 맞아 숨진 백남기 농민 사건으로 당시 경찰 지휘부가 형사 고발됐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집회·시위 현장에 살수차 배치를 금지하는 내용의 개선안을 권고했으며 경찰도 이를 수용했다. 한 경찰관은 “노조가 불법 행위를 하더라도 그냥 눈감는 게 최선”이라며 “잘못 건드려서 문제라도 생기면 나중에 책임만 물을 게 뻔하지 않으냐”고 말했다.
유성기업 집단폭행 문제가 커지자 정부 여당은 뒤늦게 경찰을 비난하고 나섰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노조원들이 기업 임원을 폭행하는 사태가 다시 일어나선 안 된다”며 “경찰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재계와 야당은 이제라도 정부가 엄정한 법 집행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경영계는 이번 사건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며 “정부는 노동계의 불법 행위에 엄정하고 단호하게 대응해 이런 불법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도 “민주노총이 권력에 취해 세상을 자기들 것처럼 여기고 촛불청구서를 들고 국회와 검찰 청사까지 점거하겠다는데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는 이를 방조했다”며 “문 대통령은 공권력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수빈/천안=강태우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