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원전 이어 UAE 독점운영권까지 '흔들'…해외사업 잇따라 '삐걱'

입력 2018-11-28 17:51
기로에 선 한국 원전산업

60년간 54조 매출 기대 UAE 원전…경쟁사 출현에 '충격'
원전업계 "脫원전 선언 후 장기 운용능력 불안감 커진 듯"
사우디·英원전 등 차질 속 수출 프로젝트 갈수록 '난항'


[ 성수영/서민준 기자 ]
아랍에미리트(UAE)가 바라카 원전의 유지보수 업무 중 일부를 프랑스 최대 원전업체인 프랑스전력공사(EDF)로 넘기기로 결정하자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등 원전 수출팀인 ‘팀코리아’가 적지 않게 당황하고 있다. 한국 업체들이 한국 기술로 건설하는 최초의 수출형 원전인 데다 향후 60년간 54조원 규모의 안정적인 매출을 낼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등으로의 원전 수출이 불투명해진 데 이어 기존에 따냈던 UAE 원전 일감까지 경쟁사에 야금야금 뺏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UAE, 한국의 장기 운영능력 의구심”

UAE 원전 운영업체인 나와(Nawah)와 프랑스 EDF 간 협약 체결에 국내 원전업계가 당황해하는 이유는 EDF의 막강한 영향력 때문이다. EDF는 세계에서 원자로 70~80기를 돌리는 세계 최대 원전 운영업체다. 국내에서 24기의 원전을 운영 중인 한수원보다 경험도 많고 설계·시공·유지관리 단가 경쟁력도 한수원보다 훨씬 높다. 2009년엔 바라카 원전 입찰 과정에서 EDF와 팀코리아가 막판까지 접전을 벌였고, 지금도 사우디아라비아 체코 등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관계다.

한국의 ‘원전 텃밭’으로 여겨지던 UAE에까지 EDF가 진출했다는 점에서 이번 계약의 파장은 상당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EDF 측은 “UAE와의 유지보수 계약은 아랍권 진출의 신호탄”이라며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이번 계약은 바라카 원전 운영권과는 관계가 없는 기술자문 성격”이라고 해명했다. 2016년 바라카 원전의 운영권을 따냈던 한수원도 즉각 상황 파악에 나섰다.

일각에선 바라카 원전 시공 과정에서 UAE 측의 반감을 산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김종갑 한전 사장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바라카 원전에서 격납건물 콘크리트 공극이 발견돼 보수 공사를 했다”고 말했다. 콘크리트 공극은 타설 시간을 단축할 때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바라카 원전은 향후 UAE 전력의 약 25%를 차지하게 될 정도로 중요하다”며 “한국 정부가 작년 탈원전을 선언한 뒤 팀코리아의 장기 원전운영 능력에 UAE 측이 불안해한 것 같다”고 전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올초 특사 자격으로 UAE를 긴급 방문했던 배경이 이번 EDF 계약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임 실장은 당시 바라카 원전의 총책임자인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UAE 원자력공사(ENEC) 이사회 의장 겸 아부다비 행정청장을 만났으나 그 이유에 대해선 줄곧 함구했다.


사우디·영국 등 곳곳서 차질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공동으로 추진해온 원전 수출 프로젝트도 곳곳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한국 수주가 유력했던 사우디아라비아다.

사우디아라비아 원자력재생에너지원(K.A.CARE)은 지난 7월 자국 내 최초 원전의 예비사업자로 한국과 프랑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5개국 컨소시엄을 무더기 선정했다. 최대 2~3곳의 예비사업자를 선정할 것이라던 예상이 빗나가면서 사우디가 본 계약자를 발표하는 내년까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사우디의 원전 프로젝트는 자국 내에 1.4GW급 원자로 2기를 건설하는 사업으로, 총사업비는 최소 120억달러다.

한전이 작년 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총사업비 21조원 규모의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수주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 일본 도시바가 한전에 매각하기로 했던 영국의 원전 사업법인 뉴젠을 아예 청산하기로 결정하면서다. 한전은 무어사이드 원전의 우선협상권을 동시에 상실했다. 영국 정부가 직접 협상에 나서면서 수익성 역시 당초보다 크게 떨어졌다. 업계에선 영국 정부가 향후 공개 입찰 방식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원전업계는 두코바니·테멜린 지역에 원전 2~4기를 짓는 ‘체코 프로젝트’에도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분위기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수주전을 지원하고 있으나 프랑스와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등이 동시에 뛰고 있어서다. 또 체코가 정서적으로 러시아, 중국과 가까운 점도 걸림돌이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세계 5대 원전 수출국이긴 하지만 경쟁국 중에서 유일하게 탈원전을 선언한 상태”라며 “운좋게 체코 수출을 따내더라도 완공 시기가 2035~2040년이어서 지금으로선 먼 얘기”라고 말했다.

성수영/서민준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