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 꺼지는 한국 車산업
(10) 한국GM 다시 안개 속으로
법원서 제동 걸린 '한국GM 분할' 계획
법원 "법인 분리는 주총 특별결의 사항" 産銀 손 들어줘
한국GM "판결에 동의 못해…모든 법적대응 방안 검토"
업계 "울고 싶은데 뺨 때려…투자계획 전면 재검토 우려"
美 GM 대규모 구조조정 대상에 韓공장 포함될 가능성
[ 장창민/박신영/신연수 기자 ]
법원이 28일 한국GM의 연구개발(R&D) 법인 분리 계획에 제동을 걸면서 한국GM을 둘러싼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한국GM을 분할해 경영 정상화 속도를 높이겠다고 공언해온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당초 계획도 틀어지게 됐다. 이 와중에 한국GM 노동조합의 투쟁 강도는 점점 세지고 있다. GM 본사는 대규모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들었다. GM이 ‘한국 법원의 법인 분리 제동’과 ‘과격한 노조’ 등을 명분으로 내세워 한국에서 ‘단계적 철수’로 돌아서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법원 “산은 비토권 인정”
서울고등법원은 이날 한국GM 2대 주주인 산업은행(지분율 17.02%)이 주주총회 ‘분할계획서 승인 건’ 결의 집행을 정지해달라며 회사 측을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을 일부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한국GM이 지난달 19일 임시 주총에서 결의한 분할계획서 승인 건의 효력을 정지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한국GM의 디자인 및 R&D 부문과 관련 인력 3000여 명을 생산법인에서 떼어내 다음달 3일 ‘GM 테크니컬센터 코리아’를 설립하려던 GM의 계획은 ‘올스톱’될 상황에 처했다.
재판부는 특히 “(법인 분리는) 한국GM 정관에 의해 보통주 85% 이상 찬성을 필요로 하는 특별결의 대상으로 규정된 ‘회사의 흡수합병, 신설합병 기타 회사의 조직개편’ 항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한국GM이 주총을 강행할 당시 법인 분리는 산은이 보유한 비토권(거부권)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산은은 5월 주총 특별결의사항(17개)을 보통주 85% 이상 찬성으로 결정하도록 하는 비토권을 확보했다. 산은이 적은 지분(17.02%)으로도 총자산의 20%를 초과하는 자산의 처분·양도 등 17개 주요 경영사항에 제동을 걸 수 있도록 한 권리다. 산은 측은 이날 판결에 대해 “법원 판단을 존중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한국GM은 즉각 반발했다. “법원 판결에 유감이며, 동의하지 않는다”는 격앙된 공식 입장까지 발표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대법원에 재항고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분할법인 설립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추가 구조조정 우려 커져
업계에선 이번 판결로 GM이 한국 사업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국GM의 한 협력업체 대표는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지만 GM이 사실상 한국 법인을 분리하는 건 불가능해졌다고 봐야 한다”며 “한국 내 사업을 고민해온 GM으로선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강경 투쟁을 고집하는 노조도 GM에 철수 빌미를 줄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GM 노조는 올 들어 성과급을 제때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쇠파이프를 들고 사장실을 점거하고, 신차 발표 행사를 방해하는 등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노조의 과격한 투쟁이 되풀이되면 GM이 기존 투자 계획을 백지화하고 떠날 명분으로 삼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GM이 발표한 전사적 구조조정 방침 역시 한국GM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GM은 최근 해외 공장 7곳을 폐쇄하거나 축소하고, 1만4700여 명을 감원하는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폐쇄하기로 한 해외 공장 2곳에 한국GM 공장이 포함된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군산공장에 이어 창원공장을 폐쇄하거나 부평 1·2공장을 통합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창원공장에서 생산하는 스파크와 다마스, 라보 등은 수익성이 높지 않아 물량을 줄일 것이라는 전망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자리 축소를 우려해 GM을 세게 압박하면 GM이 북미지역 구조조정 계획을 일부 변경해 한국 등 해외 공장부터 손을 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GM은 지난 2월13일 군산공장을 폐쇄한 뒤 노사 갈등이 격화돼 법정관리 문턱까지 내몰렸다. 5월 초에야 노사가 극적으로 희망퇴직 및 복리후생비 절감 등을 담은 자구안에 합의하면서 경영 정상화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달 R&D 조직 분리 문제 등으로 노사 갈등이 다시 고조되면서 한국GM의 경영 정상화 작업도 다시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장창민/박신영/신연수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