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하이브리드

입력 2018-11-27 18:31
이경춘 < 서울회생법원장 leek@scourt.go.kr >


최근 하이브리드(hybrid)라는 말이 자주 사용된다. 이 말은 동물의 잡종, 혼혈아를 뜻하는 라틴어 ‘hybrida’에서 온 영어 단어다. 말 그대로 무언가 다른 것들이 섞여 있는 것을 의미한다. 하이브리드란 단어가 붙으면 전기 모터와 엔진을 결합한 자동차나 우드와 아이언의 장점을 결합한 골프클럽처럼, 단순히 다른 특성들이 병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 특성의 장점이 더해져 성능이 뛰어난 제품이라는 느낌이 든다.

요즘은 구조조정 영역에서도 하이브리드가 자주 등장한다. 워크아웃을 포함한 법원 외 구조조정절차와 법원의 회생절차를 꼭 분리해서 볼 필요는 없다. 궁극적으로는 ‘어려움에 처한 경제주체의 실질적 재기’를 목표로 하는 점에서 같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 탄생한 것이 채무자회생법의 사전회생계획안, 이른바 ‘P-Plan’ 제도다. 법원에 오기 전 채무자와 채권자들은 열심히 협의를 하고 회생절차를 신청한 다음 법원으로부터 공식적인 인정을 받아 채무를 재조정하고 절차에서 벗어난다. 몇 달이 채 걸리지 않으므로 회사로서는 회생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최근에는 서울회생법원이 회생절차에 워크아웃의 장점을 접목하기 위해 마련한 ‘자율구조조정 지원(ARS)’ 프로그램도 활용된다. 일단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해 놓고 본격적으로 절차가 개시되기 전에 채무자와 채권자들이 자율적으로 협의해 본다. 협의가 잘 돼서 굳이 회생절차를 진행할 필요가 없으면 취하하고, 협의가 잘 안 되면 그때 절차를 밟으면 된다. 법원에서도 이런 협의 절차를 최대한 배려하고 지원해준다. 회생절차를 진행하는 경우에도 법원에서 이미 사건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고, 상당한 협의 과정을 거쳤으니 신속한 절차 진행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회생절차에서 진행하는 인수합병(M&A)에도 하이브리드가 있다. M&A 방식 중 수의계약 방식은 공정성에 시비가 있을 수 있는 반면, 공개매각 방식은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약점이 있다. 이 둘을 결합한 것이 이른바 ‘스토킹호스’ 매각방식이다. 일단 잠재적 인수자(stalking horse)를 정해 놓고 추가로 공개매각절차를 진행해 최대한 채무자와 채권자들에게 유리한 조건의 인수자를 최종 선정하게 된다.

이처럼 구조조정절차에도 여러 가지를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하이브리드 제도가 많이 있다. 아직은 주로 기업 구조조정 영역에 많지만, 머지않아 개인에 관한 절차에서도 신용회복위원회의 워크아웃절차 등을 접목한 매우 유용한 하이브리드 절차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