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 고두현 기자 ]
남미의 정치 지형이 바뀌면서 경제 분야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포퓰리즘 위주의 ‘핑크 타이드(pink tide·사회주의 성향 좌파 물결)’가 퇴조하고 성장을 중시하는 자유시장경제가 급부상하고 있다. ‘남미의 ABC’로 불리는 아르헨티나·브라질·칠레뿐만 아니라 파라과이와 콜롬비아 시장에도 온기가 돌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브라질이다. ‘경제 살리기’ 공약으로 지난달 새 대통령에 당선된 자이르 보우소나루는 “감세와 국영기업 민영화 등을 통해 정부 개입을 줄이고 시장 자율성은 확대하겠다”고 천명했다. 재무부·기획부·산업통상부 3개 부처를 하나로 합치는 등 29개 부처를 18개로 통폐합하고, 재정지출을 줄이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겠다고도 했다.
그가 최근 시장원리를 중시하는 인물들로 새 정부 경제팀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시카고학파’가 있다. 시카고학파는 미국 시카고대 중심의 자유주의 경제학자들로 정부 개입보다 시장원리를 중시한다. 새 정부의 ‘슈퍼 경제장관’으로 내정된 파울루 게지스는 시카고학파를 대표하는 밀턴 프리드먼의 지도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다.
게지스는 “브라질 경제의 체질개선이 급하다”며 “공기업 민영화와 연금개혁, 공무원 감축을 통해 2020년 재정수지를 흑자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남미에서 피노체트식 경제가 재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973년 고물가에 시달리던 칠레에서 좌파정권을 몰아낸 피노체트는 남미 최초로 시카고학파의 신자유주의 경제를 도입해 고도성장을 이뤘다.
게지스는 “시카고학파가 칠레를 구하고, 칠레를 고치고, 혼란을 치유했듯이 자유시장경제(liberals)는 언제나 답을 찾아낸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게지스와 함께 브라질개발은행 총재로 지명된 조아킹 레비도 시카고대 출신으로 자유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인물이다.
물론 이들의 앞날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벌써 공무원 노조와 시민단체 등이 ‘고통 분담’에 반발하고 있다. 우파 정권이 들어선 인근 아르헨티나에서 기득권층의 반대 시위가 일어난 것과 비슷하다. ‘핑크 타이드’의 진원지였던 베네수엘라 국민이 굶주림 때문에 국경을 등지는 사태를 보면서도 ‘포퓰리즘’의 유혹은 떨치기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브라질 국민과 시장은 ‘작은 정부’와 우파 정책에 호응을 보이고 있다. 홍콩상하이은행과 씨티그룹은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모처럼의 친시장 성향 경제학자들이 수렁에 빠진 브라질 경제를 구할 수 있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지식을 기를수록 인간의 삶은 풍요로우리라’는 시카고대의 교훈은 남미 최대 국가를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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