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동네-대학병원 환자 경쟁·의사-환자-정부 서로 불신
올해 41년 맞은 건강보험
매년 수천억 쏟아부어도 보장률 60%대 못 벗어나
동네의원·중소병원·대학병원
역할 분명히 정립하고 지자체 보건의료 역할 더 키워야
[ 이지현 기자 ]
“급격한 고령화, 동네 의원과 대학병원이 같은 환자를 두고 경쟁하는 자원 배분 문제, 의사-환자-정부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이 한국 건강보험 제도의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지역 보건의료체계를 살리는 커뮤니티케어를 통해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난 23일 열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국제 심포지엄’ 참석자들이 진단한 한국 보건의료 시스템의 현재와 미래다. 1977년 출범해 올해로 41년을 맞은 건강보험은 매년 수천억원의 재정을 투입해도 보장률이 6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모든 비급여를 관리하겠다”는 ‘문재인 케어’는 이를 깨기 위한 시도다. 하지만 의사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건강보험 급여가격(수가)이 낮은 상황에서 비급여마저 없애면 수익을 보전할 수단이 사라진다는 이유에서다. 고령화도 걸림돌이다. 고령 환자 증가로 생기는 재정 부담을 고스란히 건강보험이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역사회 기반의 커뮤니티케어가 대안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보장성 60% 덫 갇힌 건강보험
국내 건강보험 환자가 의료기관 등에서 1000원어치 진료를 받으면 건강보험이 626원을 부담하고 나머지는 환자가 낸다. 보장률 62.6%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80%)보다 크게 낮다. 건강보험 출범 초기 적게 내고 적게 혜택받는 저부담-저수가 시스템을 구축한 영향이다.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늘면서 의료비로 생계를 위협받는 국민도 증가했다. 2000년 1.6%에 불과했던 재난적 의료비 발생률은 2015년 4.5%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급격한 고령화도 숙제다. 국내 80세 이상 고령 인구는 지난해 153만 명에서 2025년 246만 명으로 8년 만에 100만 명가량 늘 것으로 전망된다. 평균수명이 늘면서 암 치매 등 노화 관련 질환자가 증가했다. 만성질환 관리비도 급증한다. 문옥륜 서울대 보건대학원 명예교수는 “문제는 기존 건강보험 수가체계와 보험료 부과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 없이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공급자, 소비자, 건강보험이 함께 근원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커뮤니티케어 돌파구 되나
커뮤니티케어는 국내 보건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푸는 여러 방안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지역사회의 역할을 확대해 급증하는 비용 부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왕진 의사, 가정간호 서비스 등을 활용해 치매 등 고령 환자를 집에서 돌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중증 환자는 대형 대학병원에서, 경증 환자는 동네 의원에서 치료받는 의료전달체계도 잘 갖춰야 한다. 이 같은 커뮤니티케어 모델은 일본에서 따왔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과 상황이 다르다. 정형선 연세대 의료복지연구소장은 “지역별 마쓰리(축제)만 봐도 알 수 있듯 일본은 지역 뿌리가 강한 나라”라며 “우리나라는 지역 공동체가 거의 사라진 만큼 한국형 커뮤니티케어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혁신 기술 적극 활용해야”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동네 의원, 중소병원, 대학병원의 역할이 분명히 정립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학병원은 지역사회 의료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권역의료기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연계돼야 한다. 건강보험 재원을 쓰는 요양병원과 장기요양보험 재원을 쓰는 요양시설의 역할 조정이 필요하다. 지방정부 역량도 높여야 한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보건의료에 대한 지방정부의 책임을 높이기 위해 건강보험료 수입의 5~10%를 지자체가 사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의료서비스 필요성도 제기된다. 정 소장은 “일본은 온라인 진료를 허용하고 건강보험 수가를 지급한다”며 “온라인 진료 의사가 20분 내로 도착할 수 없는 거리에 있으면 수가를 주지 않는 등 분명한 시스템을 갖췄다”고 했다. 미국은 ‘오바마 케어’를 시행하면서 의료체계 혁신을 위한 시범사업 기금만 10년간 10조원을 배정했다. 영국, 독일 등도 마찬가지다. 김용익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보장률 70% 달성을 목표로 국민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