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업계 규모의 경제 이끌었던 리더들 모두 퇴장

입력 2018-11-26 16:05
수정 2018-11-26 16:10

카를로스 곤 전 닛산자동차 회장이 비리 혐의로 일본 검찰에 체포돼 회장직에서 해임되면서 공격적인 인수·합병(M&A) 등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덩치 키우기 경쟁을 주도했던 경영자들이 모두 일선에서 물러났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10년 넘게 회사를 이끌어 왔던 최고경영자(CEO)들이 퇴진하면서 자동차산업이 한 시대를 마감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차 등 차세대 자동차 시대의 도래와 맞물려 생산대수 경쟁 위주의 옛 패러다임이 막을 내리는 상징적인 장면이라는 설명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6일 ‘규모를 추구했던 톱들의 퇴장’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자동차 업계의 덩치 키우기 경쟁을 주도했던 경영자들이 잇따라 업계를 떠나면서 자동차 업계의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이 주목한 자동차 업계 거인들은 곤 회장을 비롯해 올 7월 수술 합병증으로 급사한 세르조 마르키온네 피아트크라이슬러 전 CEO, 내년 5월 독일 다임러그룹 CEO에서 물러나기로 한 디터 체체 다임러 회장이다.


세 경영자는 모두 자동차 생산대수를 회사 경쟁력의 근간으로 보고 덩치 키우기에 주력해 온 공통점이 있다. 마르키온네 전 CEO는 2004년 파산 위기에 몰린 피아트의 구원투수로 나서 비용 절감과 대규모 감원 등으로 회사를 되살렸다. 2009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파산 위기에 처했던 미국 크라이슬러를 인수해 회생시켰다. 이후 유통업계 거인 월마트를 모델로 삼아 압도적인 시장지배력을 갖춘 대형사로 피아트크라이슬러를 키우는 것을 꿈꿨다.

곤 전 회장도 1999년 경영난에 처한 닛산자동차에 부임해 3년 만에 비용 1조엔(약 10조원)과 부채 1조3000억엔(약 13조원)을 줄였다. 2만여명의 직원을 정리해고 해 ‘코스트 킬러’라는 별명을 얻은 뒤엔 생산대수 확대에 주력했다. 곤 회장이 이끌었던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르노·닛산·미쓰비시자동차 연합)는 지난해 생산대수 기준으로 독일 폭스바겐(1074만대)에 이어 세계 2위(1060만대)를 차지했다.


내년 퇴임을 예고한 체체 회장도 2006년 취임 이후 BMW에 빼앗겼던 고급차 시장 선두 자리를 2016년 탈환했다. 체체 회장은 “판매대수야말로 고객의 지지를 확인하는 지표”라고 강조해 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자율주행차 시대를 맞아 정보기술(IT) 업체와 전통 자동차 업체 간 연대가 강화되면서 전통적인 덩치 키우기는 구시대적 발상이 되고 있다”며 “때마침 규모의 경제를 지향해 온 리더들이 잇따라 퇴장한 것은 적잖은 의미가 있다”고 평했다.

한편 곤 전 회장 체포 이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프랑스와 일본 간 신경전이 더욱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경제장관은 프랑스 언론과 접촉에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톱은 프랑스인이 맡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사이가와 히로토 닛산자동차 사장은 이날 직원 설명회에서 “르노와 닛산 간 제휴관계가 대등하지 않다”며 앞으로 양사 간 관계를 재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