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취업 열풍의 그늘
"퇴근 후, 맥주 한잔 할 동료가 없어요"
"융통성 없는 업무 환경에 지쳤어요"
"월급도 200만원 정도로 많지 않아요"
장기 근속·연공서열 강한 日, 대졸 초임 韓보다 높지 않아
개인주의·경직된 문화 '만연'…'혐한' 분위기에 마음고생까지
작년 日취직 한국인 5만여명…5년 전보다 3만여명 증가
[ 장현주/김소현/정연일 기자 ]
국내 대기업 입사시험에 번번이 낙방하던 서모씨(29)는 지난해 우연한 기회에 채용을 위해 한국을 찾은 일본 유명 제약회사와 면접을 보고 합격했다. 서씨는 그러나 1년이 채 되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왔다. 타지에서 느낀 외로움과 예상보다 낮은 임금, 폐쇄적인 기업문화라는 ‘삼중고’에 시달려서다. 서씨는 “월급도 200만원 정도로 많지 않은 데다, 일을 마치고 동료와 맥주 한잔 하기 어려울 정도의 분위기여서 견디기 쉽지 않았다”며 “여러 문제로 고민하던 중 원하는 부서로 이동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사표를 냈다”고 말했다.
극심한 국내 고용 한파에 일본행을 택하는 청년이 크게 늘었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U턴’하는 사람들도 많다. 전문가들은 “일본 취업이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며 “문화적 차이가 작지 않은 만큼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일본 취업자 매년 증가
국내에서 일본 취업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일본 기업들이 구인난을 겪으면서 외국인에게 취업문을 넓히고 있어서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에 취업한 한국인 수는 5만5926명으로 집계됐다. 5년 전인 2012년(3만1780명)에 비해 76% 늘었다. 최근 3년 동안 매년 10%대 증가율을 기록했다. 정부 지원사업으로 일본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도 늘었다. 지난해 한국산업인력공단의 해외연수사업 등 고용노동부 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얻은 해외 취업자 5118명 중 일본에 취업한 사람이 1427명(27.9%)으로 가장 많았다. 2013년 이후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일본 취업설명회도 인기다. 지난 5일과 7일 각각 부산과 서울에서 열린 ‘2018 일본취업박람회’에는 소프트뱅크, 닛산자동차 등 일본 기업 112곳이 참가했다. 일본 기업 채용 관계자가 직접 대학을 방문하는 취업설명회도 많아졌다. 지난 9월에는 일본 미즈호금융그룹이 서울대에서 취업설명회를 열었다. 고려대, 서강대 등에서도 일본 기업의 취업설명회가 마련됐다.
장기계획 세우고 취업 준비해야
그러나 현지 부적응 등으로 1~2년 만에 국내로 ‘U턴’하는 취업자도 적지 않다는 게 취업 관계자들의 얘기다. 지난해 일본 대기업에 입사했던 김모씨(26)는 1년여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본의 폐쇄적 문화와 융통성 없는 업무 환경에 지쳤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기업은 한국 기업에 비해 융통성이 떨어지는 편”이라며 “다른 부서 사람들과 협력하는 과정에서 일부 팀원이 끝까지 원칙만 고수해 답답했다”고 토로했다.
일상생활에서 느낀 혐한 분위기에 적지 않게 마음고생도 한다. 도쿄에 거주 중인 박모씨(28)는 집 근처 쇼핑몰에 갔다가 종업원에게 홀대를 당했다. 종업원은 박씨가 신발을 가져다 달라고 요청하자 기다리라는 말만 한 뒤 무시로 일관했다. 그는 “주변에서도 한국인이라서 무시당한 것 같다는 얘기가 종종 들린다”고 아쉬워했다. 일본 기업에서 경력을 쌓아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일본 취업자들을 불안하게 한다. 일본 통신업체에서 근무하는 임모씨(30)는 “국내 기업에서 비슷한 경력을 쌓은 친구들은 쉽게 이직을 하지만 일본 기업 경력은 업계에서 별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며 “취업난을 피해 갔는데 또 다른 취업난에 직면한 것 같다”고 호소했다.
일본 기업들의 대졸 초임이 한국에 비해 높지 않다는 점도 취업자들의 U턴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일본 기업은 초임이 낮은 대신 근속 연수가 길어질수록 임금 상승폭이 큰 편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25~29세 남성 노동자의 평균 월급은 24만8100엔(약 248만원)이었다.
이창민 한국외국어대 융합일본지역학부 교수는 국내 취업난을 피해 무작정 일본 기업을 선택하는 도피성 취업은 필패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랫동안 일본 취업을 준비한 사람도 막상 현지에 도착하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단기 취업보다는 최소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커리어를 목표로 해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장현주/김소현/정연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