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블루오션 시프트] 광군제와 '할인 경제'

입력 2018-11-22 17:59
권영설 논설위원


[ 권영설 기자 ] 매년 11월11일 열리는 중국의 광군제(光棍節)는 세계 최대의 온라인 쇼핑 축제다. 올해 광군제에서는 하루 동안 34조7000억원어치가 팔렸다. 지난해보다 27% 늘어난 액수다. 홈쇼핑을 합한 우리나라 연간 전자상거래 규모(약 60조원)의 절반 이상을 하루에 팔아 치운 것이다.

오늘(11월23일) 미국에서 시작하는 블랙프라이데이도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이벤트다. 추수감사절 다음날을 ‘검은 금요일’로 정해 크리스마스 시즌까지 이어지도록 꾸민 연말 경기 진작 이벤트다. 백화점들은 연초에 매입해 놓은 상품들을 ‘땡처리’하는 기회로 삼는데, 이 행사에 맞춰 신제품을 내놓는 세계적인 업체들도 많아졌다.

하루 거래액 35조원 新기록

국내에서도 수년 전부터 ‘코리아 세일 페스타’를 열고 있다. 추석 직후부터 열흘 정도 진행되는데 기대보다 효과가 미미하다. 상품도 적고 할인율도 크지 않아서다.

블루오션 전략 시각에서 볼 때 광군제는 가치혁신을 이뤄낸 성공 사례다. 일단 스토리가 있다. 광군제는 ‘빛나는 몽둥이(棍) 날’이란 뜻이다. 몽둥이는 혼자 사는 사람, 싱글을 뜻한다. 싱글들끼리 서로 선물하는 이벤트를 만들어 낸 것이다. 여기다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등 기술도 완비해 최적의 쇼핑환경을 일궈냈다.

광군제와 블랙프라이데이가 보여주는 것은 바로 디스카운트노믹스(discount-nomics) 즉, 할인경제의 가능성이다. 사람들은 필요해서도 사고, 부족해서도 사지만 무엇보다 깎아주기 때문에도 사는 것이다. 품질이나 기술력이 아니라 할인 그 자체가 수요를 창출하고 그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추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할인경제의 현장은 이미 우리 생활 곳곳에 있다. 백화점들은 거의 연중 3분의 1을 ‘세일’ 간판을 내걸고 있다. 아파트마다 동네 슈퍼마켓의 할인 전단지가 아침 신문에 끼여 배달된다. 길에는 아주머니들이 매일 전단지를 들고 나타난다. 쿠폰, 마일리지, 회원 포인트도 디스카운트노믹스를 가능케 하는 중요 도구들이다. 홈쇼핑은 생방송 할인 행사와 다름없다. 백화점에서 수명을 다한 패션상품은 아울렛으로 내려가고, 거기에서도 못 판 상품들은 길거리에서 팔린다. 착한 주부들은 ‘원래 정가’보다 엄청나게 싼 가격에 구매하고는 ‘벌었다’고 자랑한다. 할인이야말로 누구나 참여하는, 경제성장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경제적인 소비'를 사업모델로

이제까지 할인은 누군가의 손해로 여겨져 왔다. 그리고 브랜드를 자랑하는 회사일수록 할인을 이미지와 자존심의 손상 정도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할인이 새로운 수요를 촉발하는 엔진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 필요하다. 비즈니스 모델로 설계만 잘하면 ‘할인’은 판매자에게나 제조업자에게나 이득이 될 수 있다. 판매자들은 할인을 강력한 마케팅 도구로 쓸 수 있다. 제조업체들도 남아 있는 재고를 털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할인은 큰 도움이 된다.

블록체인 기술이 아니더라도, 가상화폐가 아니더라도 이런 것들이 곳곳에서 통용되는 토큰이 있다면 개개인들의 가처분 소득도 늘어난다. 중장년층 중에는 자신이 수십만원어치 이상의 각종 포인트를 갖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지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할인경제를 기존 경제와는 또 다른 실체로 보는 시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곳곳에 흩어진 할인 도구들을 묶어 쓸 수 있도록 하는 비즈니스에 뛰어드는 회사들이 점점 늘고 있다.

디스카운트노믹스를 선점하려는 대회전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