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극혐의 시대, 中道가 답이다

입력 2018-11-21 18:30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 서화동 기자 ] 늦은 밤 취객들 간 시비는 드물지 않은 일이다. 말다툼이 폭행사건으로 번지는 것도 다반사다. 지난 13일 새벽의 서울 이수역 주점 폭행사건이 큰 뉴스가 된 건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여성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였다.

‘이수역 폭행사건’이라는 제목의 글은 남자 다섯 명이 여성 두 명을 폭행했고, 화장하지 않고 머리가 짧은 여성에게 욕설과 비하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싸움, 여성 비하 발언이 뇌관이었다. 국민청원 참여자는 하루 만에 30만 명을 돌파했고, 21일 현재 35만 명을 넘어섰다. 이후 경찰 조사에서 사건은 ‘남혐(남성 혐오)-여혐(여성 혐오) 논쟁’으로 확산됐다.

툭 하면 활활 타는 혐오 논쟁

불붙은 젠더 논쟁은 연예계로도 번졌다. 유명 래퍼 산이와 제리케이가 랩으로 서로를 ‘디스(disrespect)’하며 힙합계를 달궜다. 산이가 지난 16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신곡 ‘페미니스트(FEMINIST)’를 발표하자 또 다른 래퍼 제리케이가 이를 반박하는 노래 ‘노 유 아 낫(NO YOU ARE NOT)’을 공개했다. 산이는 다시 ‘6.9㎝’란 곡으로 응수하며 공방전을 벌였다.

랩의 특성상 가사는 도발적이고 원색적이다. 산이의 ‘페미니스트’는 스스로 페미니스트임을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왜곡된 여성관과 여성 비하 의식을 갖고 있는 남자의 위선을 꼬집는 내용이다. 하지만 일부 가사를 떼놓고 보면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그렇게 권릴 원하면 왜 군댄 안 가냐 왜 데이트할 땐 돈은 왜 내가 내” “합의 아래 관계 갖고 할 거 다 하고 왜 미투해?” 등의 가사가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제리케이는 ‘NO YOU ARE NOT’을 통해 “36.7% 임금격차 토막 내 그럼 님이 원하는 대로 언제든 돈 반반 내 (중략) / 없는 건 있다 있는 건 없다 우기는 무식/ 없는 건 없는 거야 마치 면제자의 군부심”이라며 산이를 공격했다. 미국 국적자여서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는 점을 비꼰 것이다. 그러자 산이는 다시 ‘6.9㎝’란 곡에서 “속마음은 여자 존중치 않는 파렴치”라고 응수했다. 6.9㎝는 일부 남성 혐오 사이트에서 남성을 비하할 때 쓰는 말이다.

혐오는 혐오를 낳을 뿐

극한의 말들이 오가는 논란을 지켜보는 마음은 편치 않다. 여성들은 아직도 남성들 사고가 구시대적·억압적·차별적이라고 비판한다. 남성들은 남자에게도 불리한 것이 많고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당하고 있다고 날을 세운다. 어쩌다 우리가 이런 ‘혐오사회’에 살게 됐을까. 따지고 보면 남혐, 여혐만이 아니다. 제주에 들어온 예멘 난민 문제에도 그랬고, 소수자·노인·주부 등에 대해서도 매도와 혐오가 난무한다. 한남충(수구적인 한국 남성) 꼴페미(여성 우월주의자) 틀딱(노인) 맘충(엄마) 등 혐오 용어도 가지가지다.

고단하고 불안한 사회 분위기가 이런 혐오를 부추긴다는 분석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상대방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자기중심주의다. 내 편, 네 편 갈라놓고 싸우는 데 익숙해서 중도(中道)가 없는 것이 문제다. 여기서 중도란 가운데가 아니다.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유연함과 배려, 경청이다. 그래야 실용적 해법이 나온다. 소득주도성장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부작용이 많으면 고쳐야 한다. 탈원전이 아무리 지고(至高)의 가치라도 전력 수급의 현실을 무시하면 환경근본주의에 빠지고 만다.

12년 동안 원불교의 최고지도자로서 교단을 이끈 경산 상사는 지난 4일 종법사 이·취임식에서 “중도란 때와 장소에 맞게 심법(心法)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경직된 극단주의, 혐오에 기초한 논쟁과 주장은 소모적이고 자기파괴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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