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1월21일(17:44)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올해는 과거 STX그룹의 중추였던 기업들이 대거 매각에 성공했다. 한 때 산업은행(산은)을 중심으로 한 채권단의 관리에 놓여져 있던 10여 곳의 STX 계열사 가운데 팔리지 않고 남은 것은 STX조선해양 한 곳 뿐이다. 산은은 비영업용 자산 매각 등 STX조선 매각을 위한 경영정상화에 열심이다. 하지만 만성적인 국내 조선산업 내 과잉경쟁구조 해소, 중형조선소들의 수주를 위한 금융지원, 글로벌 조선 업황 개선 등 3박자가 갖춰져야만 산은의 STX구조조정 ‘졸업’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STX계열사 단계적 정리...STX조선해양 하나 남아
2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TX조선은 비영업용 자산 매각을 통한 유동성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9월 고성 플로팅 도크와 특수선 사업부를 삼강엠앤티에 매각한데 이어, 최근엔 진해 행암공장을 중견 건설사 동일스위트에 매각하는 등 비핵심 자산 정리 작업을 추진 중이다. 내년 말까지 경영정상화 과정을 거친 뒤 매각에 나선다는 것이 산은 등 채권단의 기본 방침이지만 채권단은 다양한 통로를 통해 인수자를 물색 중이다. 인수자의 경영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RG(선수금환급보증)발급 등 금융지원책 역시 오는 22일 정부가 내놓을 조선업 대책과 연계해 고안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STX조선은 2013년 해체돼 채권단 관리에 들어간 STX그룹에서 매각되지 않고 남은 마지막 핵심 계열사다. 산은 주도로 단계적으로 이뤄진 STX계열사 매각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다. 오릭스 프라이빗에쿼티(PE)로 팔렸다 2014년 GS그룹으로 재매각된 집단에너지업체 STX에너지(전 산단에너지발전)와 STX전력 등 에너지 계열사는 현재 GS E&R로 이름을 바꾸고 2017년 기준 매출액 1조 2881억원, 영업이익 1608억원을 기록한 알짜 자회사로 부상하고 있다. 정유에서부터 민자발전까지 다양한 에너지 산업 포트폴리오를 갖춘 GS그룹과의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는 평가다.
STX그룹 성장사(史)의 핵심 축인 벌크선사 팬오션(구 범양상선)은 2015년 닭고기 전문업체 하림에 매각됐다. 매각 당시 양계 회사가 해운업을 인수하는 것에 대한 업계에 우려가 제기됐지만 팬오션은 올해 3분기까지 19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팬오션은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액 2조 158억원, 영업이익 1515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STX의 과거 핵심 계열사들이 대거 매각에 성공했다. STX그룹의 모태인 디젤엔진 제조업체 STX엔진(구 쌍용중공업)이 연합자산관리(유암코)를, 무역상사인 ㈜STX는 중국계 사모펀드 AFC머큐리유한회사를 새 주인으로 맞았다. 지난 2일엔 회생절차가 진행 중이던 STX중공업의 부실채권 전문 운용사 파인트리파트너스로의 매각이 확정됐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채권단 관리 초기 매각에 성공한 기업들은 GS, 하림 등 전략적 투자자(SI)에, 최근 매각된 기업들은 사모펀드 등 재무적 투자자(FI)에 매각된 것이 특징”이라며 “몇 년새 커진 사모펀드의 역할, 글로벌 업황 부진 속 구조적 침하를 겪고 있는 한국의 경제 상황이 반영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경쟁해소·RG발급·업황개선 3박자 맞아떨어져야
내년 말을 바라보고 추진 중인 STX조선 매각은 쉽지 않은 과정이라는 것이 구조조정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만성적인 국내 조선산업 내 과잉경쟁구조 해소, 중형조선소들의 신규 수주를 위한 RG발급 등 금융지원, 2020년까지 글로벌 조선 업황 개선 등 세 가지 요건이 맞아떨어져야 인수자를 찾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지난 4월 내놓은 ‘조선업 발전전략’을 통해 조선사 간 경쟁 구도 개편에 대한 계획을 밝혔지만 만성적인 과잉 경쟁 구조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올해 들어 STX조선해양의 주력 선종인 중형 탱커 시세가 올해 들어 5~10% 가량 높아졌지만 여전히 손익분기점에 못 미치다보니 저가 수주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금융권은 저가 수주로 판단되는 거래엔 RG발급을 거절하고 있다. 설령 저가 수주가 아니더라도 거래액의 40% 인 선수금을 제외한 나머지 60% 제작비용에 대한 자금조달능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금융권은 RG를 발급하지 않는다. 최근 삼강S&C가 수주했던 중형 유조선 4척 및 STX조선이 수주한 7척의 탱커 계약이 무산된 이유다.
업계는 22일로 예고된 정부의 조선업 추가 지원책 발표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중소형사들에 대한 RG발급 등 금융지원이 지원책의 핵심을 이룰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선 이번 지원책에 조선업 경쟁구도 해소를 위한 현실적인 대안이 제시돼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조선업 구조조정 전문가는 “국내 조선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높이려면 대형3사는 두 곳 이하로 줄이고 중소형 조선사는 현대중공업 계열(삼호·미포)과 비현대계열(STX·한진·대한·성동 등)로 나누어 경쟁 구도를 단순화 시키는 산업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곡소리가 나온다고 RG를 발급해줘 경쟁력이 없는 조선소를 살리는 것은 우리 스스로 조선업을 망치는 일”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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