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개봉 '국가부도의 날' 주연 배우 김혜수
외환위기 직전 1주일의 혼란
가공인물들의 숨가쁜 기록
시나리오만으로 분노 느껴
한시현은 책임 다하는 인물
덜 도식화된 연기하려 노력
뱅상 카셀과 호흡은 행운
[ 유재혁 기자 ]
1997년 외환위기 상황을 다룬 상업영화 ‘국가부도의 날’(감독 최국희)이 오는 28일 개봉한다. 실화에 바탕을 뒀지만 가공의 인물을 내세워 창작한 이 작품은 국가부도의 날을 1주일 앞두고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배우 김혜수가 위기를 가장 먼저 예견하고 대책 수립에 분투하는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 역을 해냈다. 서민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정책수단을 마련하려는 한시현은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에게 부당한 지원 조건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한다. 20일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김혜수를 만났다.
“외환위기를 온몸으로 겪었던 우리들의 얘기입니다. 우리가 안다고 하지만 잘 몰랐던 1997년을 추억할 수 있는 작품이죠. 영화를 매개로 의미있는 논쟁을 벌일 수도 있을 겁니다. 젊은 관객들도 많이 봐줬으면 좋겠어요.”
김혜수는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몰입감과 함께 분노를 느꼈다고 한다. IMF 위기를 겪은 세대로서 당시 고통들이 떠올랐다. 서울 생활을 접고 외국으로 이민을 떠나야 했던 친구, 상처받았던 친인척들도 생각났다. 당시 몰랐던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됐다고 했다.
“한시현은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자신보다 직급이 높은 고위 관료들과 싸우고 IMF 수장과도 맞섭니다. 그러나 한시현을 ‘투사’라기보다는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인물로 그리려고 했어요.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사회에서 고위직에 오른 여성이라면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내면서 할 말은 할 것으로 봤죠. 극중 한국은행 총재도 한시현을 눈에 거슬리는 후배라면서도 능력은 인정한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김혜수는 ‘투사’는 모든 걸 버리고 싸우는 사람이지만, ‘소임을 다하는 자’는 마음만 옳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그런 의미에서 투사보다는 소임을 다하는 사람이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신념과 원칙을 동력으로 행동하지만 덜 전형적인, 고루하지 않은, 좀 더 인간적이고 덜 도식화된 인물로 한시현을 그려내려 했어요.”
그는 IMF 총재역을 맡은 프랑스 배우 뱅상 카셀과 호흡을 맞춘 건 행운이라고 했다.
“카셀의 외모에 반해 좋아하게 됐지만 실제 연기도 대단했어요. 스펙트럼이 다채로운 배우죠. 그와 연기하는 장면에선 카셀의 대사까지 다 외울 정도로 연습했어요. 현장에서 그는 영화 속 카리스마보다 훨씬 부드러웠어요. 스태프에게도 친절했고요.”
그는 극중 대립각을 세우는 재정국 차관 역 조우진의 연기도 높게 평가했다. 김혜수는 “조우진은 연기에 천재적인 데다 노력까지 하는 배우”라며 “같은 배우로서 큰 자극을 받았다”고 말했다.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