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대한민국 '펀드 트라우마'

입력 2018-11-20 17:52
박성완 증권부장


[ 박성완 기자 ] 증시가 흔들릴 때면 꼭 나오는 얘기가 있다. 대외 불확실성과 외국인들의 셀 코리아. 지난달도 예외는 아니었다. 외국인은 한 달간 4조원 가까이 순매도했고, 코스피지수는 13.4% 급락했다. 외국인에 울고 웃는 한국 증시. 하루 이틀 얘기는 아니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언제까지 그래야 하나.

외국인에 울고 웃는 증시

한국 증시의 외국인 투자자 보유 비중은 36%다. 높은 편이긴 하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 대만은 40% 수준이고, 일본도 30% 가까이 된다. 외국인 비중이 높은 것은 양면성이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938.75까지 떨어진 코스피지수가 올초 2598.19까지 올라온 것은 외국인들이 한국 주식을 90조원 가까이 사들였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가 늘면 상장사들의 회계 투명성이 높아지고, 기업 가치가 올라가는 등의 긍정적 효과도 있다. 문제는 변동성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할 때마다 나타나는 외국인 대량 매도는 시장에 큰 충격을 준다. 특히 외국인의 절반 이상이 신흥국에 투자하는 펀드들이라 미국 금리 인상 등 ‘신흥국 악재’가 있으면 일단 한국에서 돈을 뺀다.

이럴 땐 국내 기관이 버텨줘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연기금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자산운용사(펀드)는 돈이 없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미국은 주식형 펀드 자산이 전체 상장사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0%에 달한다. 일본과 영국도 각각 25%와 21%다. 한국은 4.4%다. 거래 비중도 2.9%에 불과하다. 2008~2009년엔 이 비중이 12%까지 커졌지만 이후 3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이 대목에서 미래에셋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2000년대 중반 국내 재테크시장에는 펀드 열풍이 불었다. ‘1억원 만들기’ ‘3억원 만들기’ 등 적립식 펀드가 인기를 끌었다. 투자자들이 은행이나 증권사 창구를 자발적으로 찾아가 “미래에셋 주세요”라고 했다. 연 20~30%대 수익이 나기도 했다. 다른 운용사들도 같이 성장했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펀드 대중화, 자본시장 토종화에 기여했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펀드시장은 ‘싹만 틔우다가’ 시들어 버렸다. 미래에셋 인사이트펀드가 결정적이었다. 2007년 10월 출시 후 한 달 만에 4조원이 몰렸다. 중국 증시에 80% 넘게 ‘몰빵’한 이 펀드는 처참히 깨졌고, 투자자들은 ‘펀드 반 토막’의 쓰라린 경험을 했다. 11년이 지난 지금 수익률(설정 후)은 70%로 회복했다. 하지만 이 기간을 버틴 투자자들은 많지 않다. 참담한 수익률을 안고 돈을 뺐다. 펀드의 ‘펀’자도 싫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금융산업의 본질인 신뢰가 깨졌다.

국내 자산운용업 키워야

국내 펀드시장은 아직도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민 노후 대비 재테크의 한 축이 돼야 할 연금시장이 크지 못하고 있다. 투자해서 ‘성공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시중 돈은 부동산으로 쏠려 거품을 키운다. 펀드에 돈이 안 들어오니 증시를 받쳐주지도 못한다. 증시는 외국인 손놀림에 춤추고, 밤잠 설치기 싫은 투자자들은 펀드시장을 외면한다. ‘악순환’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금융당국은 선진국의 ‘퇴직연금 자동투자제(디폴트 옵션)’나 장기투자 세제혜택 등 제도적으로 시장을 활성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미국은 펀드 자산의 60%가 퇴직연금을 통해 들어온다. 금융투자업계도 신뢰를 회복해 ‘판’을 키울 노력을 해야 한다. 증시가 침체된 지금이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