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욱의 전자수첩] "한국은 봉"…오만한 다이슨, 애플과 닮았다

입력 2018-11-20 09:17
수정 2018-11-29 15:13
다이슨, 공청기 신제품 일본보다 15만원 비싸
무선청소기 등 타 제품도 한국서 제일 비싸
애플 아이폰도 해외보다 10~25만원 비싸
다이슨 애플 고가에도 불성실 AS 논란 닮아
한국 소비자 합리적 제품으로 눈 돌려
다이슨·애플, 최근 국내 판매량 주춤



"알지 못한다"

지난 주 서울 CGV 청담에서 열린 '다이슨 퓨어 핫앤쿨 공기청정기' 출시간담회에서 한 기자가 일본과 출시가격 차이가 나는 이유를 묻자 다이슨 측이 내놓은 대답이다. 다이슨 측은 "아시아 지역의 대기오염 문제가 심각한 만큼 공기청정기 시장 잠재력을 높게 보고 있다"고 부연했다. 한국은 미세먼지 문제로 공기청정기 수요가 충분할 것이란 자신감으로 들렸다. 그래서 가격도 유독 비싼걸까.

다이슨 퓨어 핫앤쿨 공기청정기의 한국 출시가격은 99만8000원이다. 두 달 정도 먼저 출시된 일본과 중국에서는 각각 8만4000엔(약 84만원), 5490위안(약 89만원)으로 책정됐다. 한국보다 15만원, 10만원씩 저렴한 셈이다. 한 두번이 아니다. 다이슨은 유독 다른 나라보다 한국에서 비싸게 팔았고, 숱한 고가 논란에도 콧대를 꺾지 않았다.


청소기 제품도 마찬가지다. 다이슨이 3월 국내 출시한 무선청소기 'V10 플러피'의 경우 영국 출고가는 449.99파운드(65만2000원), 미국 599달러(67만7000원), 일본 6만4584엔(약 64만7000원)이다. 국내 출고가는 94만8000원으로 30만원 가량 비싸다. 실제 판매 가격에서도 차이가 난다. V10 플러피의 국내 인터넷 최저가는 74만원 수준인데, 일본과 미국(아마존 기준)은 각각 61만원, 54만원으로 약 10~20만원의 차이가 있다.

다이슨 입장은 이렇다. 나라별 지사 유무와 환율, 유통 비용에 따라 가격 차가 난다는 것이다. 궁색하다. 다른 해외 가전업체들은 한국과 해외 판매가격이 거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내 판매 가격이 저렴한 경우도 많다. 이탈리아 브랜드 스메그의 믹서기 '블렌더(BLF01)'는 국내 인터넷 최저가는 25만원인데, 미국 가격은 30만원을 훌쩍 넘는다. 커피포트로 유명한 이탈리아 드롱기의 커피포트(KBOV2001)는 국내에서 8만원이지만 미국에서는 27만원에 살 수 있다.

다이슨은 10년 전 무선형 스틱청소기를 앞세워 한국 진출과 동시에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이후 신제품 출시때마다 가격을 올렸지만 매년 판매량은 2배씩 늘었다. 다이슨이 고가 전략을 고수하게 된 배경이다. 다이슨 입장에선 비싸도 팔리니 비싸게 팔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다이슨 제품은 잘 팔리는 고급 제품이 됐다.

이런 행태는 다이슨보다 1년 먼저 한국 시장에 진출한 애플에서도 읽힌다. 애플의 아이폰은 한국에서 더 비싼걸로 유명하다. 이달 초 국내 출시한 아이폰XS 256기가 모델의 출시 가격은 163만원이다. 미국에서는 지난 9월 출시 당시 환율로 따지면 세금 10% 추가해서 140만원 정도다. 홍콩과 일본은 세금 8%가 붙어 약 152만원, 139만원이다. 한국 가격과 10만~25만원 정도 차이가 난다.

애플은 고가 전략으로 한국 소비자들에게 프리미엄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비싼 아이폰은 사용자의 정체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소비 문화로 진화했다. 비싼 가격이 고급 이미지로 대변되고 충성고객까지 양산한 셈이다. '아이폰이니까 비싸도 돼'라는 소비자 심리는 아이폰 가격을 지속 상승시켰다. 다이슨 제품이 한국에서 더 비싸게 팔리는 배경과 일치한다.

애플과 다이슨의 한국 시장에 대한 자신감은 형편없는 AS(사후서비스)로 이어졌다. 애플은 국내 소비자들의 구매 환경 개선에 무관심했다. 애플의 불성실한 AS는 늘 도마에 올랐고, 고장난 아이폰의 높은 견적과 긴 수리기간은 소비자가 받아들여야할 덕목이 됐다. 다이슨도 다르지 않다. 다이슨은 국내 진출 이후 소비자들의 문의에 대응할 콜센터 인력, 서비스 센터 부족 등으로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최근 양사 제품에 한국 소비자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불합리한 가격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비싸도 팔린다'라는 이들의 맹신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다이슨의 상중심 청소기 국내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LG전자의 코드제로 9시리즈 출시 이후 40%로 반토막이 났다. 여기에 삼성전자가 상중심 무선청소기 파워건을 내놓고, 일명 ‘차이슨’으로 불리는 중국산 카피 제품까지 인기를 끌면서 다이슨의 입지는 더 좁아지고 있다.

애플의 상황도 비슷하다. 애플은 아이폰XS 시리즈의 판매 부진으로 위기에 봉착했다. 아이폰XS·XS맥스·XR은 국내 출시 첫 주 이통 3사에서 약 17만대가 팔리며 전작인 아이폰8·아이폰X의 60% 수준에 그쳤다. 경쟁작인 갤럭시노트9이 출시 50여일 만에 국내 판매량 100만대를 돌파하며 전작인 갤럭시노트8과 비슷한 판매 추이를 보이는 것과 대조된다.

다이슨과 애플은 비슷한 시기 한국 시장에 진출한 이래 늘 비싼 가격표를 내밀었다. 그렇다고 가격에 걸맞는 기능의 제품을 보여준 것도 아니다. 소비자를 배려하지도 않았다. 이들의 가격표를 오만함으로 간주한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제품으로 눈을 돌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이진욱 한경닷컴 기자 showg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