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N '플레이어' 강하리 役 송승헌
"연기 재미 못 붙였던 20대, 창피해"
"'플레이어' 통해 장르물 재미 느꼈죠"
송승헌이 배우 데뷔 20여 년만에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왔다. 한결 힘 뺐더니 대중의 호감도도 높아졌다. OCN 드라마 '플레이어'를 통해서다.
최근 종영한 '플레이어'는 사기꾼, 드라이버, 해커, 파이터까지, 각 분야 최고의 플레이어들이 뭉쳐 가진 놈들이 불법으로 모은 더러운 돈을 찾아 터는 유쾌 통쾌 머니 스틸 액션 드라마. 이 작품은 유료플랫폼 시청률에서 가구 평균 5.8% 최고 6.7%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케이블, 종편 포함 동시간대 1위를 차지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송승헌은 이 작품에서 천재 프로 사기꾼 강하리 역을 맡아 몸을 내던지는 액션, 파격적인 변장부터 능청스러운 연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새로운 '인생 캐릭터'를 경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6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모처에서 만난 그는 "'송승헌 다시 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이만큼 내가 '송승헌'이라는 배우 이미지에 갇혀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소회를 전했다.
지난해 OCN '블랙'에 이어 '플레이어'까지 연이어 장르물을 선택하며 대중앞에 선 그는 과거 멜로에서의 멋있기만 한 이미지를 버렸다.
송승헌은 "예전 작품에선 정의롭고 여자를 지켜주고, 재벌집 손자에 조금은 현실적이지 않은 역할을 많이 했었다. '플레이어'에서 욕을 서슴지 않고 까불거리며 사기를 치는 모습에 시청자들이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플레이어'에 출연하게 된 것은 오랜 시간 형, 동생으로 지내 온 고재현 PD 때문이다. 두 사람은 고 PD가 조연출 시절 '여름향기'를 통해 만났다. 이후 '블랙' 촬영 B팀 감독을 했고, '플레이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 설명이다.
"부족한 친구들이 모여 사회를 꼬집는 현대판 홍길동 같은 이야기를 그려보자고 하더라. 하리 입장에선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해야 해서 무거운 주제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쾌하고 스피디하게 만들자고 제안하셨다. 고 PD는 '그동안 대중에게 보여준 적 없던 친구들 앞에서의 장난기 많고 짓궂은 송승헌의 모습을 보여주자'라고 말씀해주셨다."
송승헌이 '플레이어'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멜로를 절제했다는 점이다. 그는 "우리나라 드라마는 '기승전멜로'지 않나. 웰메이드라는 목표보다는 B급 정서의 코미디여도 볼 때만큼은 지루하지 않은 드라마를 만들자가 모두의 목표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동안 멜로물을 많이 했는데 '블랙' 이후 장르물을 하면서 '이걸 왜 이제서야 했을까' 할 정도로 재미를 느꼈다"고 귀띔했다.
함께 연기한 이시언, 정수정(크리스탈), 태원석 배우와의 호흡도 완벽했다. 그는 "이번만큼 배우들과 팀워크가 좋았던 작품은 오랜만이었다. 이시언, 태원석과는 지금도 같이 운동하고 지낸다. 낯 가리는 수정이도 '오빠들'을 편해하더라. 우리가 정말 잘해줬다"고 말하며 웃었다.
시즌 2 제작에 관해서도 "고 PD가 해외에 숨겨둔 은닉 자금을 털러 가보자라고 얘기도 했었다. 채널에서도 두 번째 시즌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모든 스태프가 준비된다면 '플레이어'는 하고 싶다. 이 멤버 그대로 가는 게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플레이어' 이후 대중의 평가는 생소하고 놀랍기만 했다. 그는 스스로 "예전에 그렇게 힘줘서 할 때는 잘 안됐는데, 촬영장에서 노는 듯 연기하니 좋은 평가가 와서 당황스러웠다"고 털어놨다.
1995년 의류브랜드 '스톰' 모델로 데뷔한 그는 이듬해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을 통해 허당미 넘치는 잘생긴 대학생 역으로 이의정과 호흡을 맞추면서 단번에 스타 반열에 올랐다.
이후 '해피투게더', '가을동화', '여름향기'에 이르기까지 멜로 드라마를 통해 20대 아이콘과 같은 배우로 거듭났다. 그렇지만 잘생긴 얼굴만큼 연기력에 대해서는 저평가됐다. '에덴의 동쪽'과 같은 작품을 할 때에는 발연기 논란도 있었다.
그는 '남자 셋 여자 셋' 시절을 떠올리며 "갑작스럽게 모델이 되고 연기를 했다. 웃기는 능력도 없고 연기도 못했기에 어설픈 대학생 캐릭터로 잡아주셨다. 맨날 세트장이 불이 나서 촬영장을 안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연기하기가 싫었다"고 털어놨다.
40대가 된 지금 지난 배우 생활을 돌이켜 보며 송승헌은 "하나도 재밌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연기에 대한 열정이 있던 사람도 아니었고, 갑작스럽게 연기했는데 대중이 좋아해 주시고, 그래서 했다.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직업 중 하나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거짓말처럼 창피한 이야기다. 누군가는 '안 하면 됐잖아'라고 하는데 그럴 수 없는 분위기였다"라고 고백했다.
슬럼프에 빠진 그를 일으켜 세운 건 한 장의 팬레터였다. "팬레터의 대부분은 '좋아한다'는 말이 많다. 어떤 편지를 봤는데 마지막 줄에 '당신이 가진 직업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직업인데 감사하며 살라'고 쓰여있더라. 내 연기를 보고 감동했다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럽고 창피했다. 이렇게 쉽게 생각하면 안 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송승헌은 "노력하는 배우들이 참 많은데 대중이 알지 못하는 이름들이 더 많다. 그런 분들을 봤을 때 죄송스럽기도 하다. 당시엔 몰랐다. 나이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나는 운이 좋고, 능력에 대해 과분한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사람보다 조금 눈에 띄는 비주얼이었고, 연기적인 부분을 평가 절하된 적도 없다. 그저 너무나 못했다. 그것마저도 연기적인 면으로 극복해야 하는 것 같다. 조금 더 일찍 깨달았으면 더 빨리 성숙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히트작 중 하나인 '가을동화'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다. 송승헌은 "최근 케이블에서 재방송을 하더라. 도저히 못 보겠더라. 송혜교는 매회 울고 있고, 스토리는 지금 보면 전형적이고 단순하다. 하지만 연출과 순수한 배우들이 만나 시너지를 냈다. 지금 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연이어 장르물을 달려온 그는 '가을동화'를 넘어설 멜로를 노리고 있었다. 그는 "요즘 판타지나 로코, 장르물 전성시대이지 않나. 유행은 또 도니까 정통 멜로의 시대도 올 것 같다"고 기대감을 전했다.
송승헌의 롤모델은 톰 크루즈다. "'미션임파서블'의 액션은 몇 번을 봐도 멋지다. 도대체 몇 년생인지 궁금했다. 그 나이가 되어 액션을 하고, 반겨주는 현장 분위기도 부럽더라. 나도 체력 관리를 잘 해서 톰 크루즈 나이쯤이 되어도 액션, 멜로 가리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 꼭 비주얼적인 부분이 아니어도 멋지게 나이 들고 싶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사진=더좋은이엔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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