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코노미] 전셋값 통계 작성 이래 최대폭 하락…'역전세난·깡통주택' 속출

입력 2018-11-19 15:35
수정 2018-11-29 14:47
올해 -2.46%…2004년 감정원 집계 이후 최저
거제 -22%…2년 만에 전세가격 1억원 '폭락'



전국 아파트 전셋값이 14년 만에 마이너스 전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새 아파트 입주가 사상 최대 규모로 이어진 영향이다. ‘역전세난’을 넘어 ‘깡통전세’도 늘고 있다.

19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이 2.46%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감정원이 2004년 관련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저다. 마이너스 변동률 또한 14년 만이다.

◆10개월 만에 22% 하락한 곳도 나와

거제는 -22.83%를 기록해 전국에서 가장 많이 떨어졌다. 기초 지자체의 연간 전셋값 낙폭으로는 통계 작성 이래 최대다. 수월동 거제자이 전용면적 84㎡는 2년 전만 해도 2억9500만원에 전세가 계약됐지만 지난달엔 1억9500만원에 세입자를 받았다. 이 밖에도 안산(-13.33%)과 안성(-11.88%), 경주(-10.52%), 서산(-10.16%), 평택(-9.61%), 울산(-9.47%) 등의 낙폭이 두드러졌다. 대부분 입주가 몰리거나 산업이 무너지면서 수급 불균형이 심화된 지역들이다.


일부 지역에선 깡통전세도 나타나고 있다. 깡통전세란 매매가격이 2년 전 전세가격을 밑도는 집을 말한다. 이 경우 집주인이 집을 팔더라도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렵다. 충남 서상 동문동 ‘동문코아루’ 전용 59㎡의 경우 최근 1억원에 전세거래되면서 2년 전 가격(1억9000만원) 대비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같은 기간 매매가격 또한 2억원 대에서 1억6000만원 선으로 추락하면서 깡통전세가 됐다.

전문가들은 올해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된 새 아파트 입주가 수급균형을 깨뜨렸다고 진단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공급과잉 지역을 중심으로 전셋값 하락이 지속되면서 집주인과 세입자 간 법적 분쟁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전세가격 약세가 내년 매매가격 움직임에 하방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역전세난 강타

경남 거제시 고현동 일대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e편한세상고현’ 전용면적 84㎡는 최근 1억5000만원에 세입자를 구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전세가격이 2억5000만원 수준이던 주택형이다. 하지만 2년 만에 반값 가까이 떨어졌다. 고현동 L공인 관계자는 “3~4년 전 조선소가 잘 돌아갈 때 늘어났던 아파트 공급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없어지자 임대차시장도 박살이 났다”고 전했다.

조선업이 몰락한 거제 아파트 전셋값은 2016년 10월 셋째주부터 2년 넘게 한 차례도 쉬지 않고 떨어졌다. 2011년만 해도 연간 20%가 올랐지만 올해 들어선 지난달까지 22.83% 급락해 전국에서 가장 많이 떨어졌다. 수월동 ‘거제자이’ 전용 84㎡의 경우 지난달 1억9500만원에 전세 물건이 거래 돼 2년 전보다 1억원 낮아졌다.


주변 산업도시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력업종인 조선과 자동차 업황이 모두 부진한 울산도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고 있다. 울산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로 꼽히는 남구 신정동 ‘문수로2차아이파크’는 2년 전만 해도 전용 84㎡ 전셋값이 4억5000만원 안팎이었지만 최근엔 4억원 선까지 떨어졌다. 현지 D공인 관계자는 “그나마 입지가 좋아 가격 방어가 잘 된 편”이라면서 “주변 아파트 전세는 3~4년 사이 가장 저렴한 가격에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무거동 ‘옥현주공’ 전용 59㎡ 전셋값 역시 2년 만에 5000만원가량 내렸다. G공인 관계자는 “재작년 2억원 하던 집이 이번에 1억5000만원에 계약됐다”면서 “그나마도 집주인은 1억6000만원을 부르다가 막판에 1000만원을 깎아줬다”고 말했다. 그는 “울산의 역전세가 심각한 상황”이라며 “나가는 세입자들에게 수천만원을 얹어줘야 하는 집주인들은 죽을 맛”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 인근인 전하동 R공인 관계자는 “중개업소도 1년새 100곳 가까지 문을 닫을 지경인 게 울산의 현실”이라며 “외환위기 때보다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수도권 북상…“매매가에 악재”

수도권에선 공급과잉으로 인한 역전세난이 확산되고 있다. 평택 안산 안성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 9000가구에 이어 내년 1만6000가구가 집들이를 하는 평택에선 구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전셋값 약세가 두드러진다. 용이동 푸르지오1차 전용 108㎡는 지난달 1억5000만원에 전세거래돼 2년 전 대비 8000만원 정도 하락했다. D공인 관계자는 “2015년께 분양한 단지들이 지난 연말부터 쉬지 않고 입주한 영향”이라면서 “고덕국제도시가 내년부터 집들이를 시작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산은 ‘무더기 재건축’ 후유증을 앓고 있다. 고잔동 ‘고잔주공8단지’ 전용 54㎡는 2년 전만 해도 1억6000만원 안팎에 세입자를 받았지만 요즘은 1억원 선이 위태롭다. 최근 1억1000만원에 전세거래됐다. 전용 61㎡ 또한 2년새 전셋값이 4000만원가량 빠졌다.

줄지어 입주하는 새 아파트가 전셋값을 끌어내렸다. 안산에선 올해 6800가구가 집들이를 마쳤다. 내년에도 초지동과 인근 송산그린시티를 합쳐 8000가구가 집들이를 한다. 2020년엔 입주 예정 물량만 1만 가구를 넘을 예정이다. 최근 20년 동안 가장 많은 수준이다. S공인 관계자는 “‘호수공원대림’ 전용 163㎡ 전세 물건이 지난달 초 4억2000만원에 나왔는데 아직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3000만원을 내렸다”면서 “새 아파트 전세가 헐값에 쏟아지다 보니 역전세난이 오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대부분 지역에서 전세가격이 약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이 38만 가구로 올해(46만 가구)보단 적지만 여전히 예년과 비교하면 크게 늘어난 수준이어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공급과잉으로 인한 전세 적체가 단기간에 해소되긴 어려울 것”이라면서 “내년엔 지방뿐 아니라 서울과 수도권 상황도 올해보다 안 좋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전셋값 하락은 전세를 끼고 매매하는 ‘갭 투자’ 수요를 줄게 하기 때문에 매매가격 약세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형진/민경진/양길성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