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서브원 MRO 사업 매각
대기업 모두 떠난 시장…홍콩계 어피너티 뛰어들어
LG, 판토스·서브원 지분 잇단 매각
일감몰아주기 규제 '정면돌파'
자금력 앞세운 글로벌 PEF
인터파크 등 전자상거래 업체와 국내 MRO 시장 '한판승부'
[ 오상헌/이동훈 기자 ]
홍콩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가 LG그룹의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사업을 사들이기로 하면서 국내 MRO 시장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대기업이 줄줄이 떠난 탓에 몇몇 전자상거래 업체와 중소 구매대행업체가 나눠 갖고 있는 시장에 자본력과 경영 노하우로 무장한 글로벌 PEF의 참전이 예고돼서다.
무한경쟁 들어간 MRO 시장
어피너티는 2014년 오비맥주를 세계 최대 맥주회사인 AB인베브에 매각해 4조8000억원의 차익을 올린 데 이어 2016년 국내 최대 음원회사 로엔을 카카오에 팔아 1조2000억원을 번 대형 PEF다.
어피너티가 서브원의 MRO 사업부문에 눈독을 들인 건 ‘안정성’과 ‘성장성’ 때문이란 분석이다. 서브원 MRO사업은 지난해 매출 3조1989억원에 1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거둔 ‘알짜’이자 서브원 매출의 59%를 차지하는 핵심 부문이다. LG그룹 물량이 70%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사업이 안정적이다. 투자금(5000억원 이상) 대비 수익률로 치면 매력적인 매물이란 게 PEF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어피너티가 5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로 올라서면서 ‘대기업 계열 MRO 업체’란 꼬리표를 떼어내는 만큼 성장성도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서브원은 대기업 계열사라는 이유로 지난해 동반성장위원회의 중재로 중소기업단체들과 맺은 협약에 따라 매출이 3000억원에 못 미치는 중소·중견기업에는 신규 영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어피너티로 대주주가 바뀐 만큼 서브원은 중소·중견기업을 새 고객으로 맞이할 기회를 얻게 된다.
국내 시장에 대적할 만한 경쟁 업체가 없다는 점도 어피너티가 서브원 MRO 사업을 인수한 배경으로 꼽힌다. 2011년 삼성 MRO 계열사인 아이마켓코리아(작년 매출 2조3078억원)를 인수한 인터파크를 제외하면 서브원에 견줄 만한 MRO 기업은 없다. 현대차그룹에는 MRO 계열사가 없고, SK그룹 산하 행복나래는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 사회적 기업이다.
재계에선 어피너티가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신규 고객 확보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한다. 어피너티가 MRO 업체를 추가로 인수하는 ‘볼트온(bolt-on)’ 전략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갖출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규제 정면돌파하는 LG
재계에선 서브원 매각작업의 ‘속도’와 ‘강도’에 주목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8월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을 통해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지 석 달 만에 LG가 서브원의 새 주인을 선정했기 때문이다. 총수 일가가 2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LG 총수일가의 (주)LG 지분율 46.6%)이 지분을 50% 초과해 보유한 자회사((주)LG의 서브원 지분율 100%)도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은 아직 국회 통과조차 안 된 상태다. 더구나 MRO사업은 내부거래가 외부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효율적이라는 사실만 인정받으면 총수 지분율, 내부거래 비중과 관계없이 예외로 인정받을 수 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서브원 MRO사업을 팔지 않아도 된다는 법리 해석이 있지만 LG그룹이 논란의 소지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매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LG는 지난달 구광모 회장 등 오너일가가 보유한 물류 계열사 판토스 지분 19.9%도 팔았다.
PEF업계 관계자는 “서브원 MRO사업을 매개로 LG가 어피너티와 손잡은 만큼 인수합병(M&A) 등에서 협업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오상헌/이동훈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