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죽은 카쇼끄지가 오르던 유가를 끌어내리다

입력 2018-11-16 08:11
15일(현지시간) CNBC가 흥미로운 보도를 했습니다.

에너지 관련 헤지펀드인 어게인 캐피탈의 존 킬더프 파트너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를 속여 증산을 이끌어내는 바람에 국제 유가가 급락했다"고 전한 겁니다. 유가는 엊그제까지 12일 연속 하락이란 기록을 세웠었지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란 제재(11월4일)를 앞두고 트럼프가 압박해서 사우디가 증산에 나섰다. 사우디는 이란과 관련해 강력하게 제재를 실행할 줄 알았다. 하지만 막판에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원유의 가장 큰 수입국 8개국에 예외를 줬다. 그래서 하루 아침에 과잉공급이 빚어졌다. 사우디는 완전히 속았다.’


월스트리트에서는 진작 이런 얘기가 돌았습니다. 하지만 약간 버전은 다릅니다.

제가 들은 버전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말 카쇼끄지 사건을 활용해 사우디에 ‘거절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해 재갈을 물렸다는 겁니다. (마치 대부의 마피아처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칭 '협상의 달인'입니다. 책도 썼구요.

이런 트럼프는 지난 10월 초 곤경에 처했습니다. 유가가 계속 올라 10월3일 브렌트유는 배럴당 90달러, 서부텍사스유도 80달러를 육박했습니다.


중간선거를 한달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급했을 겁니다.

유가가 오르면 미국 소비자(=유권자)들은 부담을 느끼게됩니다. 이는 경제 성장의 근간인 소비를 해칠 뿐 아니라,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여 미 중앙은행(Fed)의 금리 상승을 부추길 수 있습니다.

이 때 마침 터진 게 카쇼끄지 암살 사태입니다. 그가 터키의 사우디 영사관에서 사라진 게 10월2일이었습니다.

터키의 점증하는 압박속에 사태는 점점 사우디에 불리하게 돌아갑니다. 사우디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계속해서 사우디를 옹호했지요.

하지만 트위터로는 사우디를 압박했습니다. 카쇼끄지가 아닌, 유가와 관련해서죠.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과 답합을 계속 비판했습니다. 이란 제재를 앞두고 유가가 계속 올랐기 때문입니다.

사우디는 압박을 느꼈을 겁니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팔을 걷고 나서 사우디를 제재할 경우 MBS는 날라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만 가만히 있다면 어떻게든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겠죠.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에 원하는 건 유가 하락이었습니다. 사우디가 트럼프 측과 커뮤니케이션을 했는 지 안했는 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사우디는 증산을 주도했고, 유가가 안정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예외 인정과 함께 폭락을 시작했죠.

중간선거 직전에는 국제 유가는 브렌트유 70달러, WTI 60달러 수준이었습니다.

미 재무부는 이날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과 관련해 사우디 인사 17명에 대해 경제제재를 단행했습니다.

제재 대상엔 MBS의 최측근인 사우드 알 카흐타니가 포함됐습니다. 하지만 정작 MBS는 없었습니다.

미국의 제재 발표는 사우디 검찰이 자국에서 조사 결과를 발표한 뒤입니다. 양국이 충분히 논의를 했다는 뜻입니다.

유가는 반등할 수는 있겠지만, 많이 오르기 어려울 겁니다. 사우디가 감산을 많이 하기도 어려울 겁니다.

유가는 Fed를 자극할 수 있구요. '협상의 달인' 트럼프가 여전히 카드를 들고 있으니까요.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암살 당시 녹음을 미국에도 공유했다고 밝혔지요.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