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한화그룹 화학 부문
석유화학 업황 분석
손영주 교보증권 연구원
지난 14일 뉴욕상업거래소의 서부텍사스원유(WTI)가 배럴당 55.7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11월20일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 5일 미국이 이란에 대한 제재를 완전히 복원했지만 8개 국가에 대해서는 이란산 원유 수입 제한을 일시적으로 유예할 것이라고 밝혔고, 미국과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원유 증산 방침이 부각되면서 WTI는 12거래일째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WTI 배럴당 60달러는 정유 및 석유화학업종의 멀티플 배수(EV/EBITDA) 상승과 하락을 가르는 변곡점이라고 할 수 있다. 멀티플 배수는 기업가치를 보여주는 수치다. 2014년 말로 시간을 되돌려보자. OPEC이 그해 11월23일 열린 2차 정례회의에서 원유 감산 불가 선언을 한 지 열흘 만인 12월5일 WTI는 배럴당 60달러를 밑돌았고, 이후 급락세가 이어졌다. 원유에 대한 재정수입 의존도가 높은 OPEC과 러시아 그리고 ‘셰일오일 붐’이 불고 있던 미국이 서로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한 출혈 경쟁에 들어가며 비롯된 하락세였다.
이처럼 배럴당 60달러 선은 산유국들의 출혈경쟁으로 인해 ‘오일머니’가 정유 및 석유화학 업체와 소비자들에게 전가되기 시작하는 지점이라고 판단된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60달러를 밑돌기 시작하면 석유개발 기업의 멀티플은 떨어지고, 정유 기업과 석유화학 기업은 상승하게 된다는 얘기다.
최근 한 달간 유가가 급락한 만큼 향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중심으로 원유 감산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사우디는 오는 12월부터 하루에 50만 배럴의 원유를 감산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미국의 원유생산량이 최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시장점유율을 지속적으로 늘려가고 있다는 점에서 OPEC 잔여국과 러시아가 원유 생산을 공격적으로 줄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당분간 국제 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안팎의 횡보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유가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져 있는 지금, 국제 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선에서 횡보할 경우 정유 업체와 석유화학의 멀티플배수가 상승할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 국제 유가만 놓고 보면 정유 및 석유화학업종은 비중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정유업종은 휘발유 마진 회복까지 관망 필요
하지만 정유업종은 휘발유 마진 부진에 대한 부담이 지속되고 있어 투자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지난 8일 일일 석유제품가격 기준으로 휘발유 크랙마진(고도화 설비에 투입되는 원료인 벙커C유와 석유제품 가격 간 차이)이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고가 석유제품으로 인식되는 휘발유 가격이 저가 석유제품 B-C유 가격 밑으로 내려간 것은 2006년 이후 13년 만에 처음이다. 현재 휘발유 가격 하락세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다.
휘발유 가격이 급락하는 요인은 WTI 디스카운트(두바이유 대비 배럴당 10달러가량 낮은 수준) 확대 및 성수기 진입에 따른 미국 정제가동률 상승, 중국 휘발유 수출 물량(쿼터) 확대에 따른 휘발유 공급 증가 등이다. 문제는 드라이빙 시즌(여름 휴가철 석유 소비가 많은 시기)을 위한 휘발유 재고 비축기인 내년 3월까지 휘발유 마진이 정체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등유와 경유 마진이 계절적 성수기로 인해 호조를 기록하고 있지만, 휘발유 마진 급락세는 정유업종에 부담 요인이다. 당분간 관망이 필요하다.
석유화학이 정유보다 유가 수혜 더 커
석유화학업종 주가가 그간 부진했던 요인은 크게 미·중 무역분쟁과 유가 강세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석유화학업종은 특히 중국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한 부담이 크다. 미·중 무역분쟁 리스크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번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공격 수위가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오는 30일 개최될 주요 2개국(G2)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를 감안하면 무역 분쟁 이슈는 지금은 다소 소강 상태라고 판단하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을 떼어 놓고 보면, 최근 유가 급락으로 인해 나프타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한 것은 석유화학업종의 멀티플배수 상승 요인인 만큼 단기적으로는 비중을 확대하는 방법이 유효해 보인다. 지금은 고유가 디스카운트(저평가)가 많이 반영된 석유화학업종이 휘발유 마진에 대한 부담이 있는 정유업종보다 유가 하락으로 인한 수혜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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