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어르신 사회봉사 나서야

입력 2018-11-12 18:39
수정 2018-11-13 09:37
김인규 < 경기대 총장 kik@kgu.ac.kr >


25년 전 KBS 미국 워싱턴 특파원 시절, 특파원 한 분이 치질수술을 받고 퇴원하는 것을 도우려고 버지니아주 페어팩스병원을 찾았다. 퇴원 수속을 어떻게 밟는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데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60대 어르신이 다가왔다. 한국인 자원봉사자라고 소개한 그는 이 병원에 자신과 같은 자원봉사자가 3000명이나 된다고 했다. 그들 중 대부분이 의료업계에서 일하다 은퇴한 사람들로, 환자들의 입·퇴원 같은 쉬운 일을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병원으로부터 어떤 금품도 받지 않고, 오히려 병원에 기부금을 낸다고 했다. 한국인 환자를 돕고 그들에게서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 삶의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미국 곳곳의 공공 골프장에 가보면 자원봉사자의 위력을 더 실감할 수 있다. 티업 순서대로 내보내는 일부터 진행 속도를 점검하고 문제점을 해결하는 일까지 지역 노인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 당시 알곤키안골프장에서 언제나 웃는 얼굴로 맞아주던 70대 할아버지는 “왜 새벽부터 이런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골프를 좋아해서 은퇴 후 줄곧 이곳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골프 치는 것을 보는 것도 즐겁고, 오전에 여기서 봉사하면 오후에는 무료로 골프를 칠 수도 있습니다.”

공원과 공공주차장 같은 공공시설 관리에도 나이가 지긋한 자원봉사자들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이런 단순하면서도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일에 비싼 인건비를 주고 인력을 고용한다면 아마도 의료비와 골프장 이용료 등이 엄청나게 오를 것이다. 자원봉사자 덕분에 미국 공공요금이 저렴할 수 있다. 한편으로 이들은 하고 싶은 봉사활동을 통해 여생을 보람 있게 보내고 젊은이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그래서 미국을 떠받치는 기둥의 하나가 자원봉사자라는 말까지 나온다.

25년이 지난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병원 같은 의료복지시설에서 자원봉사자의 참여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공원이나 집에서 무료하게 하루를 보내는 노인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젊은이들에게 일자리가 절실하듯이 어르신들에게도 그들의 적성에 맞는 자원봉사 기회를 적극적으로 마련해 줘야 한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14%를 넘어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6년 뒤에는 고령인구가 전체의 20%가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고 한다. ‘인구절벽’과 맞물려 다가올 초고령사회에서 노인들의 자원봉사활동이야말로 사회병리 현상을 치유하는 유일한 돌파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