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예산안 심의·삭감은 국회의 권한이자 의무죠

입력 2018-11-12 09:02
Cover Story - 내년 '슈퍼 예산' 편성


[ 박종필 기자 ]
국회는 ‘법을 만드는 곳’으로 국민들에게 인식돼 있다. 하지만 국회가 하는 일이 법을 만드는 게 전부는 아니다. 입법부(국회)와 행정부(정부), 사법부(법원) 등 국가를 떠받치는 세 권력의 축이 서로를 견제하는 ‘3권 분립’ 원리에 따라 정부가 하는 많은 일을 감시한다. 이 가운데 국가 세금을 이듬해 어디에 쓰겠다고 밝힌 가계부, 즉 ‘정부 예산안’이 적절하게 편성됐는지 따지는 일은 국회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매년 정기국회 기간인 11월에 관련 심사를 진행한다.

국회는 삭감 권한, 정부는 증액 요구 거절 권한

국회는 정부 예산안을 삭감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정부는 국회의 증액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국회의 예산 심사를 ‘창과 방패의 대결’이라고 부른다. 정부와 여야가 치열한 토론을 통해 예산안 가운데 어느 부분을 깎고, 어디를 늘릴지 정한다. 예산안 원안이 협의 과정에서 수정되는 배경이다.


올해의 경우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야당은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사업인 일자리 확대와 남북한 경제협력 관련 예산 등을 삭감하는 대신 철도·도로 등 사회간접자본(SOC)에 예산을 더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관련 예산의 ‘원안 사수’를 강조하고 있다.

국회가 매년 예산안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합리적으로 조정해온 건 아니다. 심사자료가 워낙 방대해서다. 국회는 1개월 안에 심의를 종결해야 하는 ‘시간 싸움’을 벌인다. 정부로서도 예산안 집행을 서둘러야 하기 때문에 심사 시간을 많이 내주기 어렵다. 국회법에 규정된 예산심사 절차에 따르면 정부 예산안은 늦어도 매년 9월3일까지 제출돼야 한다. 예산안이 제출되면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가 정부를 대표해 예산안의 통과 필요성을 주장하는 시정연설에 나선다. 이후 분야별 상임위원회가 정부 부처 예산안을 나눠 심의한다. 상임위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나름의 논리를 갖고 정부 예산안을 삭감하거나 또는 증액을 요청한다. 상임위 토론 결과로 모든 것이 깔끔하게 결론나지는 않는다. 국회 내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는 1차 검수를 마친 상임위별 예산안 검토 결과를 바탕으로 삭감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정부 예산안의 삭감 여부는 전적으로 국회 권한이다. 예결위 산하 감액소위원회에서 예산 항목의 감액을 결정한다. 하지만 원안 대비 예산을 증액하거나 없던 항목을 신설하려면 예결위 증액소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증액 때는 정부도 개입한다. 정부가 ‘증액 거부권’을 갖고 있어서다. 기획재정부의 예산담당자인 예산실장이 증액소위 심사단계부터 회의 테이블에 함께 앉는다. 이 소위원회 심사에 돌입하면 밤을 꼬박 새워가며 회의하기 일쑤다. 이 모든 절차를 예산심사 기한인 12월2일까지 끝내야 한다.

“지역구 이기주의 유혹” 지적도

정부가 증액 거부권을 갖는 이유는 국회가 정치 논리에 따라 특정 예산을 마음대로 늘릴 수 있어서다.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 내 지하철역 신설, 학교시설 보수 등에 국가 예산을 끌어오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지역민 표로 당선 여부가 결정되는 구조 때문이다. 전년 대비 삭감됐거나 배제된 예산을 되살릴 마지막 기회가 국회 심사단계 중에 있다.

예결위 예산심사 과정에서 심사 테이블에 앉은 국회의원들에게 ‘우리 지역구 시설보수 예산을 늘려달라’는 식의 쪽지를 보내는 일은 다반사였다. 특정 예산 항목을 추가하거나 증액하는 이른바 ‘쪽지예산’은 지난 19대 국회(2012~2016년) 때까지 우리 정치사에서 부끄러운 관행으로 남아 있었다. 한 국회 직원은 “지금은 쪽지예산 관행이 거의 사라졌지만 상임위나 예결위 심사 초기 단계에서 ‘예산이 증액되도록 질의를 해달라’는 식의 민원은 아직도 많다”고 했다.

국회에서 예산안이 최종 확정된 이후에도 정부가 부득이한 사유로 예산을 추가해야 한다고 판단하면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제출할 수 있다. 이 경우 본예산 심사 때보다 더 짧은 시간동안 국회 심사를 마쳐야 한다. 국회 예산심사를 지원하는 연구기관인 국회 예산정책처가 최근 펴낸 ‘국가재정 이론과 실제’에서는 “본예산 때보다 상대적으로 예산안 심의가 밀도 있게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긴급한 목적으로 편성하는 추경이 재정지출 확대를 목적으로 매년 관행적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NIE 포인트

국회가 정부의 예산안을 심의하는 과정을 정리해보자. 정부 예산안을 국회가 심의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놓은 이유도 생각해보자. 국가의 지속 발전을 위해서는 예산이 어떻게 편성되고 집행되어야 하는지도 토론해보자.

박종필 한국경제신문 정치부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