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도 부산 신발 사가던 '보따리상' 이었다

입력 2018-11-11 18:39
신발산업 100년, 기로에 서다

결국 마케팅이 성공 판가름

1974년 창업자 필 나이트
삼화고무서 운동화 OEM 계약

마이클 조던 발굴해 스타 마케팅
글로벌 독보적 브랜드로 도약


[ 김기만 기자 ]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서 승리의 여신으로 나오는 ‘니케(Nike)’에서 따왔다. 로고인 ‘스우시(swoosh)’는 니케의 날개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키의 브랜드 가치는 2018년 320억달러(약 36조원)에 달한다. 세계 스포츠신발 1위인 나이키의 시장점유율은 약 38%에 육박한다.

나이키는 어떻게 글로벌 기업이 됐을까. 창업자인 필 나이트 전 회장이 일본에서 산 운동화를 미국에 가져다 판 게 사업의 시작이었다.

일본을 찾은 나이트는 오니츠카(아식스의 전신)의 운동화를 사서 미국 시장에 파는 일을 시작했다. 대학 시절 육상부 코치였던 빌 바우만과 초록색 소형 트럭을 타고 미국의 대학 운동장을 떠돌며 운동화를 팔았다. 당시 회사 이름은 ‘블루 리본 스포츠’, 운동화의 상표 이름은 ‘타이거’였다. 1971년 나이키로 이름을 바꿨다. 이때 디자인 전공 여대생에게 35달러를 주고 로고를 개발했다.

한국 신발업계에서 기억하는 나이트의 첫 모습도 ‘보따리상’이었다. 신발업계 관계자는 “나이트가 1974년 부산의 삼화고무를 직접 찾아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 첫 계약(3000켤레)을 맺었다”며 “당시 나이키는 저가 일본 러닝화를 미국으로 수입해 팔았다”고 회상했다. 국내 처음으로 나이키 상표의 운동화를 생산하기 시작한 삼화고무는 1970년대 후반부터 나이키와 함께 급성장했다. 이후 국제상사와 동양고무 등이 나이키의 주문을 받아 신발을 생산하는 전진기지가 됐다.

나이키의 성공 요인은 ‘마케팅’이다.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을 이용한 스타 마케팅이 대표적이다. 나이키는 1984년 대학을 갓 졸업한 조던과 파격적인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조던을 위한 화려한 디자인의 농구화를 만들었다. 검은색과 빨간색, 흰색이 어우러진 신발이었다.

나이키가 내세우는 브랜드 메시지도 강력하다. “그냥 해(Just do it)”라는 나이키 광고 캠페인은 미국 광고 전문매체가 선정한 ‘20세기 광고 슬로건 톱5’에 선정되기도 했다.

김기만 기자 m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