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힌 안티고네 "가족인 오빠를 매장한 건 神이 정한 삶의 원칙"

입력 2018-11-09 18:51
소포클레스와 민주주의
배철현의 그리스 비극 읽기 (26) 불문율(不文律)

장례 치르는 안티고네…마른 흙을 시신위에 뿌리고
꿀이 첨가된 우유·포도주·물, 세 가지 祭酒를 주위에 부어

시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불문율' 지키려 포고 위반

가치있는 인간…모든 이들이 눈 감고 있을때
목표를 선명하게 설정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존재



장 폴 사르트르(1905~1980)가 쓴 소설 《구토》의 주인공 앙투안 로캉탱은 프랑스 귀족을 연구하는 역사학자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이 ‘구토’라고 부른 메스꺼운 감정을 감지한다. 그는 작가답게 이 감정은 자기 존재에 대한 의심에서 생겼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점점 세상과 멀어지고 세상 가운데 자기 존재의 의미를 잃는다.

인간은 자신이 선택하고 동의한 것들의 결과다. 우리는 그런 결과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할 수 없다. 인간은 ‘무’의 상태로 태어났으며, 자기 존재의 내용과 모양을 결정한다. 인류의 스승들은 인간 삶의 존재 의미에 대한 정교한 이론과 설명을 내놓았다.

존재가 본질에 선행한다

21세기 인류의 최대 비극인 1·2차 세계대전을 유럽 한복판에서 목도한 사르트르는 “존재가 본질에 선행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인생이란 무대에 먼저 등장하고, 그 후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한다. 인간은 정의할 수 없는 ‘없음’이다. 존재는 없음이다. 그러나 자신의 선택을 통해 책임을 지는 자신만의 본질을 만들어간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 가는 행위에 스스로 책임진다. 사르트르는 본질을 아직도 들먹이는 철학자들을 질책하면서 ‘존재’라는 개념을 섬세하게 다듬었다. 인간은 깊은 숙고와 자의식을 통해 자기 나름의 가치를 만들어 의미를 구축하는 ‘자유로운’ 존재다. 이 가치는 개인이 구축하는 것이다.

그는 이 명제를 1945년 행한 강의에서 “실존주의는 인간주의”라고 선포했다. 내 삶을 결정하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이 자유는 누구나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자신의 고유성을 담보하는 ‘불문율’이다. 인생은 그 불문율을 찾는 여정이며, 순교는 그 불문율을 자신의 삶의 원칙으로 삼아 목숨을 바치는 거룩한 행위다. 안티고네는 자신의 존재를 다듬기 위해 국가와 타인을 상징하는 크레온과 대결한다.

“이 여인이 범인입니다!”

테베의 왕 크레온은 반역자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누군가가 매장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한다. 그가 테베의 왕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테베를 지키다 죽어간 에테오클레스를 위한 성대한 의례와 더불어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에 대한 공개적인 수치가 필수적이다. 폴리네이케스 시신이 매장됐다는 파수꾼의 보고를 들은 크레온은 그가 왕위에 오른 후 내린 첫 번째 ‘어명’을 보란 듯이 거역한 자를 가장 치욕스러운 방식으로 처형할 것이다. 돌로 쳐 죽이는 것이다.

크레온에게 왕은 곧 국가다. 왕의 언행은 국가라는 거대한 배를 이끄는 조타(操舵)다. 그가 이 조타를 잡으려는 순간, 조타를 무시하고 빼앗으려는 훼방꾼이 등장했다.

크레온과 테베의 원로원 의원들로 구성된 합창대는 무대에서 왕의 권위뿐만 아니라 테베라는 국가의 위신이 추락하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그때 한 파수꾼이 적막을 깨고 등장한다. 그는 한 여인을 강제로 끌고 오며 다급하게 외친다. “여기, 이 여인이 범인입니다. 그 사람(폴리네이케스)을 매장하고 있을 때 우리가 붙잡았습니다. 크레온 왕은 어디 계십니까?”(383~385행)

크레온과 원로원 의원들은 파수꾼 등장에 놀라 그를 응시한다. 파수꾼은 크레온 앞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맹세를 파기하고 왕 앞에 선 이유를 말한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의 맹세는 빈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파수꾼은 왕의 포고령을 고의로 어기고 폴리네이케스의 장례를 치르다가 발각된 여인을 현장에서 체포하는 행운을 잡았기 때문이다.

회오리바람

크레온은 파수꾼에게 그 여인을 체포한 경위를 자세하게 묻는다. 시신을 반드시 지키라는 명령을 받은 파수꾼은 시신을 덮고 있는 흙과 먼지를 말끔히 걷어내고 오래전부터 방치돼 썩고 있는 시신을 완전히 드러냈다. 혹시 누구라도 이 시신을 다시 매장하려 한다면 바로 체포할 작정이다. 파수꾼들은 시신의 악취가 자신들에게 불어오지 못하도록 바람이 불어오는 쪽 언덕 위에 앉았다. 파수꾼들의 친구인 ‘잠’이 찾아와 그들을 괴롭혔다. 그들은 시신의 보초를 소홀히 한다면 끔찍한 투석 형벌을 받을 것이라고 서로 상기시키며 잠을 쫓았다. 밤새도록 아무도 이 저주받은 시신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해가 중천에 떠올랐다. 작열하는 태양은 시신뿐만 아니라 밤새 지친 파수꾼들을 기절시켰다.

파수꾼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것은 갑자기 등장한 회오리바람이다. 이 바람은 다시 한 번 테베에 ‘역병’을 퍼뜨린다. 이 역병은 안티고네의 아버지 오이디푸스가 테베로 입성하기 전에 괴물 스핑크스가 일으킨 전염병이다. 스핑크스는 도시라는 ‘질서’로 들어가려는 인간에게 묻는다. “아침에는 네 발로, 점심에는 두 발로, 그리고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존재는 무엇인가?” 인간들은 이 대답을 스스로 찾지 않고 다른 사람이 말한 내용을 단순히 반복하려 한다.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을 알려주는 자가 없자 스핑크스는 통과하려는 자를 목 졸라 죽인다.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다 그렇듯이 인간은 원래 혼자 세상에 왔다가 혼자 사라지는 독립적인 동물이다. 그러나 도시라는 인위적인 공간을 만들어 함께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항상 의식해야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공동체를 구축할 수 있다.

스핑크스가 던진 질문의 정답은 ‘인간’,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기 자신’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땅만 쳐다보면서 눈앞에 우연히 나타난 먹이를 발견하고,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입안으로 집어넣는 ‘사족보행 짐승’이었다. 하지만 허리를 꼿꼿이 펴고 머리를 들어 정면을 응시하고, 눈앞에 떨어진 음식 쪼가리가 아니라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며 ‘이족보행 인간’이 된다. 그런 신적인 인간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며,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순교자적인 인물이 된다. 주어진 운명의 시간을 감지한 인간은 자신이 한낱 한 줌의 흙이란 사실을 알고는 고향인 땅으로 돌아가기 위해 허리와 다리를 굽히고 지팡이에 의지해 세 발로 걷는다. 그는 이제 땅과 일체가 돼 하늘을 바라보며 영원히 자연의 일부가 될 것이다.

테베 외곽에 앉아 있던 파수꾼들에게 불어닥친 회오리바람은 스핑크스다. 자신을 응시하지 못하는 인간, 남들을 흉내 내면서 주어진 고유한 삶을 찾지 못한 인간을 전염병으로 몰살할 것이다. 파수꾼은 이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하늘의 재앙인 먼지바람을 일으켜 들판을 가득 채웠고 숲의 나무까지 모두 뽑았습니다. 넓은 하늘은 먼지바람으로 가득 찼고, 우리는 눈을 감은 채 신께서 내리신 역병을 견디고 있었습니다.”(417~421행)

불문율

인간은 자기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 발견하고, 그 가치를 위해 몰입할 때 비로소 ‘인간’이 된다. 모든 인간이 눈을 감고 있을 때 자신의 목표(目標)를 선명하게 설정하고 스스로의 길을 의연하게 걸어가는 존재가 있다. 회오리바람이 멈춘 후 파수꾼이 눈을 떠 발견한 소녀다. 그는 말한다. “여기 이 소녀가 안티고네입니다. 이 소녀는 마치 새끼들을 빼앗기고 둥지가 비어 있는 것을 본 새처럼 날카로운 목소리로 비통하게 울고 있었습니다.”(423~425행) 안티고네는 현재 상황에 헌신하는 인간이다. 안티고네가 오빠의 시신을 매장하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자신의 임무이자 의무다.

안티고네는 오빠의 시신을 보자 소리 높여 울고, 이렇게 방치하도록 만든 크레온을 저주한다. 그녀는 오빠를 위해 정성스레 장례를 치른다. 작은 손으로 가져온 마른 흙을 시신에 뿌린다. 그리고 작은 청동 물항아리에 담긴 세 종류의 제주(祭酒)를 시신 주위에 뿌린다. 힘을 내 저승 세계로 가라는 ‘꿀이 첨가된 우유’와 육체에서 영혼으로 변신하는 엑스터시를 상징하는 ‘포도주’, 그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씻으라는 ‘물’이다. 파수꾼들은 안티고네를 체포하려고 달려간다. 하지만 그런 파수꾼들이 오히려 무색할 정도로 안티고네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녀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듯 침착하다.

크레온은 포고령을 대놓고 거역한 안티고네를 심문한다. 안티고네는 테베의 공지사항을 알고 있었으며 자신이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매장했다고 덤덤하게 증언한다. 그러고는 포고령에 대한 의견을 개진한다. “내게 그런 포고령(그리스어 ‘노모스’)을 내린 것은 제우스신이 아닙니다. 하계의 신들과 함께 사시는 정의의 여신께서도 사람들 사이에 그런 법을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안티고네는 크레온에게 당신은 왕이지 신은 아니라고 말한다. 신은 인간에게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삶의 원칙을 주셨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원칙으로, 인간 문명의 총아인 글로는 기록되지 않는 것이다. “그 불문율은 어제오늘 생긴 게 아니라 영원히 살아있고,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456~458행) 안티고네는 크레온이 두려워 그 불문율을 어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불문율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는 것이 그녀에겐 ‘이득’이기 때문이다. 안티고네는 삶과 죽음조차 초월하는 숭고한 가치를 위해 죽는 것이 이득이라고 판단했다.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