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 바이오헬스부 기자 bluesky@hankyung.com
[ 이지현 기자 ]
“오는 11일 전국의사총궐기대회에 병원 내 일반 행정직원까지 참석하라고 합니다. 병원 원장 지시다 보니 의사가 아닌데도 자리를 채울 수밖에 없습니다.”
수도권 한 병원에 근무하는 행정직 직원 A씨의 하소연이다. A씨가 근무하는 병원은 최근 부서장들을 통해 대리급 이상 행정직 직원은 모두 의사총궐기대회에 참석하라고 공지했다. 참석하지 못하는 사유가 있으면 담당 이사와 면담 후 불참 허락을 받도록 했다. 사실상 강제 동원이다. 일요일에 예정된 집회지만 별도 휴일 근무수당을 받지 못한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의사들이 모이는 총궐기대회에 일반 직원이나 제약회사 영업사원 등의 동원으로 논란이 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해 말 ‘문재인 케어’ 반대 전국의사총궐기대회에도 일부 병원에서 직원 등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져 눈총을 샀다. 병원 직원들은 병원장 눈 밖에 나지 않으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행사에 참석해야 한다고 토로한다. 의사들의 갑질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대한의사협회는 오진 의사를 구속한 법원 결정에 항의하기 위해 이번 의사총궐기대회를 계획했다. 진료 중 생긴 사망사고로 구속된 동료 의사를 바라보는 의사들의 분노는 점차 격해지고 있다. 의사는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직업이다. 의사들은 이번 사건을 보며 ‘언제든 내게도 같은 일이 생길 수 있다’며 불안해하고 있다.
의사협회는 이날 집회를 통해 왜곡된 의료환경을 바로잡기 위한 목소리도 낼 계획이다. 한국은 90%에 이르는 민간 의료기관이 모두 공공기관인 국민건강보험에 가입돼 서비스를 제공한다. 개인사업체를 운영하는 의사들이 서비스 가격을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는 구조다. 건강보험료를 적게 내고 진료비도 낮게 책정하는 ‘저부담 저수가’ 체제에 대한 의료계 불만이 고조되는 이유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묵묵히 환자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의사들이 많다. 이들의 공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전체 의사 집단에 대한 이미지는 사소한 것들까지 모여서 만들어진다. 의사들이 처한 현실을 지적하는 정당한 취지의 행사라도 직원에 대한 갑질 관행이 고쳐지지 않으면 역효과만 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