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탐구
"현장에 답 있다" 한달에 5번 국내외 사업장 달려가
현장 직원 격려하는 덕장
오지 찾아 직원들과 적극 스킨십
고충·건의 사항 경영에 즉각 반영
뭉쳐야 산다
건설 사업은 3~4년 집중해야 성과
팀워크로 바뀌는 환경 돌파 해야
[ 서기열 기자 ]
김형 대우건설 사장(63)은 지난 6월 취임하자마자 울산의 에쓰오일 잔사유고도화설비(RUC) 공사 현장을 방문했다. 이후에도 현장 방문은 계속됐다. 빡빡한 스케줄에도 4개월여 만에 국내외 20여 곳의 현장을 다녀왔다. 한 달에 평균 4~5곳을 방문한 셈이다. 경기 고양시 대곡소사전철 건설 현장과 서울 고덕그라시움아파트 등 국내 현장뿐만 아니라 알제리의 엘하라시 하천정비, 모로코의 사피발전소, 폴란드 원전산업포럼, 싱가포르 우드랜드병원, 보츠와나 교량, 나이지리아 인도라마 현장 등 해외 건설현장을 쉴 틈 없이 누볐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경영철학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현장에서 해법 찾고 직원과 교감
김 사장은 1978년 건설회사에 입사해 40년 동안 국내외 건설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건설인이다. 대우건설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이후 현장소장 출신답게 임직원에게 “현장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영업팀이 아무리 공사 수주를 잘 해와도 현장에서 품질관리, 안전관리, 납기 준수 등 공사 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수익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회사의 평판도 나빠진다는 게 김 사장의 생각이다. 그는 “공사 수행을 잘하면 고객의 신뢰를 얻어 후속 발주 물량 수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김 사장이 공사현장을 방문하는 목적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사업장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직원들에게 안전과 품질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는 지난 6월 취임사에서 “건설사로서 가장 중요한 사회적 책임인 안전과 품질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을 방문하면 어떤 공정에서 어려움이 있는지 빠르게 파악한다는 게 회사 임직원의 전언이다.
두 번째는 오지에서 고생하는 직원들과의 스킨십을 위해서다. 그는 스리랑카 등 다양한 해외 현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직원들의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이들의 고충을 위로하고 최대한 해결해주는 게 CEO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김 사장은 현장을 방문했을 때 사장이라기보다는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직원들을 격려하는 ‘덕장’이라는 게 대우건설 실무진의 평가다. 그는 현장을 방문했을 때 ‘번개’ 스타일로 깜짝 대화의 시간을 갖고 고충과 건의사항을 듣기도 한다. 현장의 목소리를 경영에 충분히 반영하기 위해서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현장을 다니려면 강한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만큼 건강 관리에도 각별히 신경 쓴다. 지난달에는 아프리카 보츠와나와 나이지리아 현장을 다녀왔다. 비행기로 유럽까지 12시간을 이동한 뒤 보츠와나까지 7~8시간, 다시 나이지리아로 향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그런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는 비결은 꾸준한 체력관리 덕분이다. 경복고 시절 시작한 역도를 서울대 토목공학과를 다니면서도 계속했다. 현재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꾸준히 하면서 현장을 다닐 체력을 비축하고 있다.
목표 공유로 팀워크 제고
김 사장은 틈날 때마다 임직원에게 팀워크를 강조한다. 그가 2008~2011년 스리랑카 콜롬보 항만 확장공사 현장소장으로 일할 때다. 콜롬보 앞바다의 돌풍, 비바람이 몰아치는 몬순과 싸워야 했다. 1년 365일 가운데 해상에서 공사할 수 있는 날은 77일에 불과했다. 이런 악천후 속에서 콜롬보 컨테이너 항만을 조성하기 위해 길이 6㎞의 방파제를 쌓아야 하는 고난도 공사였다. 그는 혼자서 어려움을 해결하기보다 현장 직원들과 공정의 난제를 공유하며 함께 해법을 찾아나갔다. 현장 직원들과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해 공법 및 설계를 바꿔가면서 육상 작업일수를 늘렸다. 이 과정에서 현장 직원 모두가 각자의 역할과 목표를 공유했다. 전 직원이 일치단결해 악천후와 싸운 끝에 기일에 맞춰 공사를 끝냈다. 이런 실적을 인정받아 추가 공사를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건설 프로젝트는 3~4년 동안 필요한 사람들이 뭉쳐서 집중적으로 일하면서 성과를 내는 구조다. 김 사장은 시시각각 바뀌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성과를 내기 위해선 도전정신, 협동,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가운데서도 구성원이 힘을 합치는 협동, 즉 팀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공사현장을 방문해 직원들과 함께할 때마다 “함께 잘하자, 같이 가자”고 외치는 이유다.
그는 수평적 리더십 신봉자다. 자신의 경영 방침을 강조만 하기보다 직원들의 의견을 듣고 함께 목표를 설정하고 공유하는 것을 중시한다.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개인의 목표를 세우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다.
수익성 개선 주력
김 사장은 대우건설의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연초 대우건설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매각을 포기했다. 모로코 화력발전소 현장에서 3000억원의 잠재 손실이 발생하자 당시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던 호반건설이 인수합병(M&A)을 포기해서다. 산업은행은 대규모 해외사업 부실과 M&A 무산이라는 위기에 직면한 ‘대우건설호’를 이끌 선장으로 다른 건설사 출신인 김 사장을 선임했다.
수익성을 개선해 누구나 탐내는 건설사로 만드는 게 김 사장의 목표다. 그는 “수익성 개선을 통한 재무건전성 제고를 최우선 과제로 시행하겠다”고 취임사에서 강조했다. 이를 위해 덩치 키우기 경쟁에서 촉발된 양적 성장보다 리스크 관리 강화와 원가 절감 등을 통한 질적 성장을 추구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지난달 ‘빌드 투게더’라는 새로운 비전 선포와 ‘내실경영, 미래경영, 정도경영’으로 회사를 끌고가겠다는 경영철학 발표로 이어졌다. 그는 비전 선포식에서 “기존 도급 위주의 시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장에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혁신적인 사업모델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행 중인 베트남 스타레이크사업처럼 자체 기획해서 제안하는 투자개발사업을 적극 발굴해 수익성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2025년까지 해외사업 비중 45%로 확대
사업장별 리스크 집중 관리…해외사업 추가 부실 없어
김형 대우건설 사장(사진)이 지난 6월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됐을 때 해외 사업 부실을 정리할 적임자라는 평가가 많았다. 풍부한 해외 건설현장 경험이 있어서다. 김 사장은 취임 이후 해외 사업장을 면밀히 분석한 뒤 “추가 부실은 없다”고 결론냈다. 한발 더 나아가 미래 먹거리 확보 차원에서 해외 사업 비중을 더 늘리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내놨다.
대우건설은 올 2월 모로코 화력발전소 현장에서 발생한 부실 3000억원을 회계에 반영했다. 예상치 못한 부실이 갑자기 수면 위로 드러난 터라 추가 부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김 사장은 해외 사업장을 일일이 들여다본 뒤 “외부에서 걱정하는 것보다 상황이 괜찮다”고 진단했다. 다만 그동안 리스크 관리가 부실했다는 점을 인식하고 추가 부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업장별로 집중 관리하기로 했다. 해외 현장에서 작성한 잠재 리스크 목록을 본사에서 관리 목록으로 확정지으면 현장별로 리스크 관리를 계속하는 시스템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사전에 리스크를 철저히 관리해 올해와 같은 부실이 더 이상 터져나오지 않도록 하고 있다는 게 대우건설의 설명이다.
김 사장은 모로코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기로 했다. 해외 사업을 더 키우기 위해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지난달 비전선포식에서 밝힌 2025년까지 매출 17조원, 영업이익 1조5000억원을 달성하기 위해선 해외 사업 확대가 필수라는 판단이다. 국내 건설 발주금액이 갈수록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내 사업 비중을 줄이고 해외 사업 비중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지난 3분기 말 기준으로 전체 수주 잔액 29조1400억원 가운데 해외 사업은 4조7170억원이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6.2%에 불과하다. 해외 사업 비중을 2025년엔 45%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마진율이 높은 질 좋은 공사를 중점적으로 수주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김형 사장 프로필
△1956년 서울 출생
△1975년 경복고 졸업
△1979년 서울대 토목공학과 졸업
△1978년 현대건설 입사
△2008년 현대건설 울산신항 현장소장(상무)
△2008~2011년 현대건설 스리랑카 항만공사 현장소장(상무)
△2011~2015년 삼성물산 CIVIL사업부장(전무, 부사장)
△2015~2016년 포스코건설 글로벌인프라본부장(부사장)
△2018년~ 대우건설 사장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