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해도 하소연 못해"…식품社 '검증안된 의혹'에 속앓이

입력 2018-11-06 18:17
현장에서

잇단 식품위생 의혹
통조림 햄, 120도에서 멸균처리…검출 대장균 제조과정 유입 어려워
의혹 불거진 소주·일회용 케첩도 생산·유통과정 결함은 확인안돼

불매운동 번질라 전전긍긍
온라인서 루머 급속도로 확산
사실확인 전에 여론 재판부터

김재후 생활경제부 기자


[ 김재후 기자 ] 식품회사들이 ‘여론 재판’에 떨고 있다. 사실관계가 명확히 밝혀지기 전에 식품위생 문제가 불거진 사진과 내용이 일부 기사 및 인터넷 게시판에 마치 사실인 양 돌아다니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손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식품회사들은 뾰족한 대응책 없이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는 쪽을 택하고 있다.

식품업계 잇단 루머에 곤혹

6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대상 청정원의 통조림을 생산하는 충남 천안공장은 보름 가까이 생산이 멈춰 있다. 지난달 22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대상 청정원의 런천미트 통조림에서 세균이 검출됐다고 발표하면서 24일부터 생산을 중단했다.

그러나 29일 류영진 식약처장이 국정감사에서 “통조림에서 발견된 세균은 대장균”이라고 밝히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동물의 장에 사는 대장균은 80도 이상에 1분 이상 노출되면 모두 죽는다. 통조림은 제조 과정에서 120도로 4분간 멸균 처리한다.

검출된 세균이 대장균이라면 유통이나 제조 과정이 아니라 실험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식품 관련 교수와 식품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실험은 충남도청 동물위생시험소가 했다. 대상 관계자는 “캔햄 공장은 철저한 멸균공정을 거치고 있어 대장균이 나올 가능성은 없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상은 당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공장 가동 중단으로 지금까지 10억원이 넘는 손실을 봤고, 손실은 계속 쌓이고 있다. 공장 재가동은 기약이 없다.

지난달엔 부적합 판정을 받은 물을 사용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한라산소주가 문제가 됐다. 한 언론 보도로 시작된 이 사건은 확인 결과 사실무근이었다. 관련 기사가 100여 건에 달할 정도로 인터넷을 뒤덮었다. 한라산소주와 식약처는 기사가 나온 며칠 뒤 “부적합 판정을 받은 물로 만든 소주는 한 병도 없다”고 확인했지만, 한라산소주를 검색어에 넣으면 부적합 판정 물을 연상하는 ‘수질’ 등이 연관 검색어로 나온다.

오뚜기는 출처불명의 사진 한 장으로 곤욕을 치렀다. 오뚜기 케첩에서 구더기가 발견됐다는 사진이 한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면서다. 해당 케첩은 가정용이 아니라 카페에서 제공하는 일회용 제품이다. 공장 제조 과정에서 구더기가 조그만 봉지 속으로 들어가기 힘들뿐더러 제조 과정에서 들어갔다고 가정하더라도 유통 과정에서 질식한다는 게 상식적인 판단이다.

오뚜기 관계자는 “그냥 사건이 확산되지 않았으면 한다”며 “자꾸 언급되는 게 가장 부담”이라고만 했다. 신동화 전북대 식품공학과 명예교수는 “통조림을 수없이 만들었는데, 멸균처리를 일부만 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며 “케첩도 밀봉된 상태에서 구더기가 살아 유통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말했다.


“불매운동이 가장 먹히는 곳이 식품업계”

식품회사들은 ‘의혹 제기’가 나올 때마다 숨을 죽인다. ‘사실이 아니다’고 섣불리 입장을 냈다가 자칫 소비자들의 원성을 더 살 수 있다. 인터넷 게시판이나 댓글을 더 신뢰하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식품 가격이 자동차 가전 등 내구재에 비해 상대적으로 싸고, 대체재가 많다는 점도 식품회사를 한없는 ‘약자’로 만든다. 한 식품회사 관계자는 “회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휴대폰이나 TV 자동차 불매운동을 벌여봤자 효과가 없지만, 식품은 다르다”며 “가격은 싸고 회사도 많기 때문에 자신이 믿는 정의를 표출하기 좋은 대상”이라고 했다.

식품회사들은 의혹 제기 등과 관련해 적극 대응보다는 수동적인 대응을 택한다. 검색 대행 회사들을 통해 관련 제품의 인터넷 검색 결과를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검색어 개수와 종류에 따라 대행료는 월 40만~400만원까지 다양하다.

부도덕한 기업으로 낙인찍히면 회사의 존망이 위협받는다. 남양유업은 ‘갑질’ 사건이 터지기 직전 해인 2012년 매출은 1조3650억원이었지만 지난해엔 1조1669억원으로 2000억원가량 줄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637억원에서 50억원으로 급감했다.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