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철의 논점과 관점] 돌아봐야 할 '분당·일산 활용법'

입력 2018-11-06 18:05
김태철 논설위원


[ 김태철 기자 ] 우리나라 주택 정책을 흔히 ‘냉·온탕 정책’이라고 부른다. 집값이 급등하면 진정책을 쏟아내다 집값이 급락하면 다시 부양책을 퍼붓기 때문이다. 197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이 지적한 ‘샤워실의 바보’의 전형적인 사례다. ‘샤워실의 바보’는 물 온도를 맞추지 못하고 뜨거운 물과 찬물을 반복해 트는 행태를 빗댄 것이다.

50여년 '냉·온탕 주택정책'

극단을 오가는 주택 정책의 결과는 심각한 집값 불안정이다.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집값만은 잡겠다”며 30여 차례나 ‘부동산 안정 대책’을 내놓았던 노무현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냉·온탕을 오간 실패작이다. 극단의 규제와 규제 완화가 반복되면서 중·장기적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와 이후 들어선 정부들도 이런 악순환을 끊지 못했다. 국가 백년대계 차원의 계획을 세우기보다 자기 임기 내에 먹힐 수 있는 단기 정책 처방에 급급했던 탓이다. 주택시장 침체기에는 공급을 줄이고, 호황기에는 수요를 억제한 정책이 대표적이다.

집값을 장기적으로 안정시키려면 시장 상황에 일비일희하지 말고 규제를 풀고, 수요가 몰리는 곳에 공급을 꾸준히 늘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수도권 집값이 다소 하락하거나 안정세를 보이는 지금이 오히려 적기(適期)다. 집값 급등기에는 대규모 공급 계획 발표가 단기적으로 집값을 자극하는 경우가 많다. 공급(아파트 분양)이 입주로 이어져 정책 효과를 내는 데도 시일이 많이 걸린다. 주택시장이 다소 침체 국면에 접어들더라도 정부의 대규모 공급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돼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50여 년 지속되고 있는 ‘냉·온탕 주택 정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주택 공급 방식에는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대규모 토지 보상으로 인한 뭉칫돈이 부동산시장을 자극하고 교통 체증을 가중시키는 수도권 신도시 건설이 정책 최우선순위에 올라서는 곤란하다. 미래 세대 자산으로 남겨둬야 할 그린벨트를 훼손하면서까지 신도시를 짓는다면 더욱 그렇다. 일본 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도 이런 이유로 신도시 개발을 접은 지 오래다. 도심 낙후지역을 주거·문화·상업시설이 어우러진 복합단지로 개발하는 ‘도시 수직 팽창’이 대세다.

신도시 재생은 신도시 건설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할 과제다. 1990년대 초 입주한 분당 일산 등 1기 신도시만큼 입지가 매력적인 곳은 드물다. 기반시설 역시 웬만한 서울 자치구들보다 잘 갖춰져 있다. 하지만 입주 30년을 맞는 1기 신도시는 배관이 녹스는 등 급속히 노후화되고 있다.

슬럼화 막는 도시재생이 대세

1기 신도시 규모는 모두 29만1000여 가구에 달한다. 정부가 증축 규제(최대 3개 층)를 합리적인 수준에서 푼다면 도시 재생은 물론 신도시 건설 효과도 거둘 수 있다. 리모델링 시 신규 주택 증가 제한(기존 가구 수 대비 15%)을 5%포인트만 늘리면 판교(2만9000여 가구)급 특급 신도시 2개가 생겨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정부는 ‘안전’을 이유로 추가 증축에 난색을 보이고 있지만 전향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해저에 터널을 건설하는 기술력을 갖춘 한국 건설회사에 안전 보강만 제대로 하면 추가 증축은 문제 될 것이 없다.

도시는 한 번 쓰고 마는 일회용품이 아니다. 서울 집값이 급등할 때마다 수조원을 들여 신도시를 건설하는 것보다 기존 도시를 되살리는 재생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서울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가 당장 어렵다면 1기 신도시 리모델링이라도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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