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회계시스템 마련 시간 벌었지만…중소형 보험사 자본확충 문제 여전

입력 2018-11-04 18:31
새 국제보험회계기준 도입 연기

IFRS17 시행, 2022년으로

중소형 보험사 일단 '안도'
글로벌 대형사-중소형사 절충 결과
영구채 발행 등 자본확충 시간 벌어
금융상품 회계기준 IFRS9도 연기
금감원 "통보오면 일정 조정 가능"

준비는 여전히 '산 넘어 산'
금리 변화 따른 재무 급변 우려
주주·계약자 배당 문제도 부담
감사인력도 최소 10배 늘어나야


[ 이지훈/강경민 기자 ] 새 국제보험회계기준(IFRS17)의 도입 시기가 당초 2021년에서 2022년으로 1년 연기가 확실해지면서 국내 중소형 보험사들은 안도하는 분위기다. 자본확충과 전문인력 확보 등 새 회계시스템 준비를 위한 시간을 벌었기 때문이다. 감사 인력 확충 등 회계 인프라 구축과 구체적인 시행 방식 등을 위해 금융당국과 보험업계가 하루빨리 본격적인 협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격적인 도입 유예 결정

IFRS17은 국제 보험업계의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고 비교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가 2021년 도입을 목표로 추진해 온 국제 프로젝트다. IASB는 지난해 5월 IFRS17 기준서를 확정 발표하면서 2021년 1월1일을 시행일로 예고했다.

IASB가 지난달 IFRS17 시행 시기 연기와 관련해 논의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만 해도 도입이 유예될 것이라는 예상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IASB는 원안 고수를 원하는 알리안츠그룹, AIA그룹 등 글로벌 대형 보험사와 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부분 중소형 보험사 사이에서 입장을 절충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보험업계는 프랑스, 캐나다, 뉴질랜드 등 국제 보험업계와 연대해 시행 시기 연기를 요구해왔다. IFRS17 해석을 위한 전문가그룹(TRG)에 속한 박정혁 TRG 위원은 IASB 측에 비교공시 면제를 요청하면서 힘을 보탰다. 비교공시는 직전과 새로운 기준인 IFRS17에 따른 회계처리를 모두 보여준다.

IASB는 IFRS17과 연동된 IFRS9(금융상품 회계기준) 도입 시기도 1년 연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IFRS9은 보험사 보유 주식의 주가가 하락하면 곧바로 회계상 손실이 급증하는 등 자산운용 이익의 변화 폭이 커지는 방식이다.

금감원 “공식 답변 못 받아”

IFRS17은 보험부채의 평가 기준을 ‘원가’에서 ‘시가’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과거 고금리 상품을 많이 판매한 보험사들은 적립금이 크게 증가함에 따라 부채가 대폭 늘어난다.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여력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인 지급여력(RBC) 비율이 하락한다는 뜻이다. 국내 보험사들이 지난해 말부터 신종자본증권 및 후순위채를 잇따라 발행하고 인력 감축 등 ‘몸집 줄이기’에 나선 것도 IFRS17 도입에 따른 RBC 비율 하락을 막기 위해서였다. RBC 비율은 보험업법상 100%를 넘어야 하지만 금융당국은 150% 이상을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올 상반기 기준 국내 보험사들의 RBC 비율은 253.5%다. 하지만 부채 평가기준이 바뀌는 IFRS17이 도입되면 RBC 비율은 큰 폭으로 하락한다.

이 때문에 중소형 생보사를 중심으로 자본 확충에 대한 부담과 함께 새 회계시스템 도입을 위한 준비 기간이 지나치게 짧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보험업계는 그동안 금융당국에 IFRS17 시행을 당분간 유예해 달라고 건의해 왔다. 하지만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IFRS17은 국제사회의 약속으로 유예는 불가능하다”는 뜻을 수차례 밝혔다. 이와 관련,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IASB로부터 아직까지 도입 연기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을 받지 못했다”며 “공식 통보가 오면 향후 도입 일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예되더라도 산적한 과제

국내 중소형 보험사들은 IFRS17 도입이 늦춰질 것이란 소식에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대형사들은 대형 회계법인이나 컨설팅사와 함께 시스템 도입을 준비해 왔지만 중소형 보험사들은 뾰족한 수단을 마련하지 못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1년이라는 추가 시간이 주어진 만큼 금융당국과 보험개발원 등이 적극적으로 시스템 구축을 위한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IFRS17 시행으로 인해 보험사들은 여전히 다양한 해결 과제를 안고 있다. 금리 상승과 이에 연동한 할인율 변동으로 수십조원의 자본이 출렁이는 등 회계상 변동성이 대폭 커진 게 대표적이다. 금리 변화 등 대외변수에 따라 보험사의 재무구조가 급변할 수 있어 회사 경영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주주배당과 유배당 보험상품을 갖고 있는 계약자에 대한 배당을 어떻게 할지도 정부와 보험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지적이다. IFRS17 도입에 따라 미실현이익이 증가할 경우 이를 배당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여부가 핵심이다. 계약자 배당도 골치 아픈 과제다. IFRS17은 유배당계약 준비금 규모가 커지는 구조여서다.

이번에 컨설팅 인력으로 중소형사들이 시스템 도입에 어려움을 겪은 것처럼 향후 IFRS17 도입 시 감사인력 또한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게 회계업계의 전언이다. 보험사 감사인력이 최소 10배 더 늘어나야 하지만 전문가 양성 등 이에 대한 준비는 부족하다.

■IFRS17

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 17. 2022년 1월1일부터 도입되는 국제 보험회계기준. 세계 각국 보험사의 회계기준을 통일하기 위해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에서 제정한 원칙으로 기존에 원가로 평가하던 보험부채를 시가로 평가하는 게 골자다.

이지훈/강경민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