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00일 맞는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사상 첫 벼 수확기 비축미 방출
저소득층·영세 자영업자 부담 줄여야
농어촌상생기금 기업 압박은 오해
인센티브로 자율 참여 유도할 것
청년 농업인 두 배로 확대
양곡창고 개조해 창업 공간 마련
동물훈련사 등 국가자격 신설
농협중앙회장 선거 직선제로 바꿔야
[ 임도원 기자 ]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취임 3개월째를 맞았다. 그는 전남지사 출마를 이유로 사퇴한 김영록 전 장관에 이어 지난 8월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농식품부 수장을 맡았다. ‘농·림·축산업의 미래경쟁력을 한층 강화해나갈 적임자’라는 청와대의 기대에 부응하듯 이 장관은 슬슬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농식품부는 지난주에만 쌀 직불제 개편 방안과 비축미 방출 등 굵직한 정책 추진 방안을 연달아 내놨다. 하지만 이 장관이 풀어야 할 숙제가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쌀값 등 농수산물 가격 급등으로 밥상 물가가 위협받고 있고, 농약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PLS)와 저수지 수상태양광 사업 등을 놓고 혼란이 크다. 비축미 방출에도 농민 반발이 거세다.
이 장관은 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비축미 방출은 영세 자영업자, 저소득층의 부담을 덜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며 “쌀을 계속 보유하는 것이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농업의 미래를 위한 농정개혁을 본격적으로 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서울 여의도 잠사회관빌딩에 있는 집무실에서 이 장관을 만났다.
▶역대 장관으로선 처음으로 벼 수확기에 비축미 방출을 결정했습니다.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대책입니다. 쌀값이 최근 5년 평균 가격과 비교하면 약 21% 높습니다. 지난달 25일 산지 80㎏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인 19만3188원을 기록했습니다. 쌀 공급이 늘어나는 수확기인데도 이례적으로 가격이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농민 반발이 예상됐지만 빈곤층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연내에 비축미 5만t을 방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쌀값이 왜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고 봅니까.
“농민들 사이에 쌀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큽니다. 올여름 폭염 때문에 쌀 생산량이 당초 예상보다 더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입니다. 전남에서는 생산량이 전년 대비 20%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니까요. 쌀을 계속 보유하는 것이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낼 필요가 있습니다.”
▶쌀 직불제 개편 방안도 내놨습니다.
“현행 직불제는 쌀의 생산과잉을 유발하고 대농 집중을 심화시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직불금을 재배작물 또는 가격과 관계없이 지급하는 방식으로 개편해 벼 외 타작물 재배로 유도할 계획입니다. 또 경영 규모에 따라 역진적인 단가를 적용해 대농 집중을 완화하겠습니다. 연말까지 개편 방안을 확정한 뒤 내년에 법 개정 등을 거쳐 2020년 시행할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쌀 공급 과잉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쌀 생산조정제를 비롯한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습니다. 생산조정제로 인해 올해 쌀 재배면적이 3만2000㏊ 줄었습니다. 당초 목표(-5만㏊)에는 못 미치지만, 쌀 소비가 최근 3년 동안 별로 줄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급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다고 봅니다.”
▶농업 분야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어떤 정책을 추진할 계획입니까.
“농업 분야는 작년 하반기부터 고용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증가세가 유지되도록 다각도로 노력하겠습니다. 양곡창고 등 농촌 유휴시설 30곳을 리모델링해 청년들의 창업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동물간호복지사, 동물훈련사 등 국가자격을 신설해 전문인력도 양성하겠습니다. 2022년까지 현재 1% 수준인 40세 미만 청년 농업인 비율을 2%까지 높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PLS가 내년에 시행되면 혼란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많습니다.
“PLS가 시행되면 특정 농산물에서 기준치가 설정되지 않은 농약이 0.01ppm만 검출돼도 해당 농산물의 유통이 차단됩니다. PLS 시행은 국산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높일 기회입니다. 등록농약 부족 등 문제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수립한 보완 대책을 통해 대부분 해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처벌보다) 계도 위주로 시행할 계획입니다.”
▶내년 3월 치러지는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와 관련해 ‘깜깜이 선거’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현행 위탁선거법에 따라 조합장 선거운동 기간이 14일로 제한돼 신인이 자신을 알리기가 어렵습니다. 현재 국회에는 예비후보자 제도를 신설해 60일간 공개행사 및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안이 의원 입법으로 다수 발의돼 있습니다. 금품 살포는 차단하되 말할 기회는 넓히도록 선거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농협중앙회장을 직선제로 뽑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국회에 구성된 농협발전소위원회에서 직선제 전환 문제를 심도 있게 검토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의원이 개편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농협중앙회장 권위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직선제로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 모금과 관련해 ‘기업의 팔을 비튼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은 민간의 자발적인 기부금으로 조성됩니다. 정부는 상생기금 출연을 강제하고 있지 않습니다. 상생기금을 출연하는 민간기업에 기존의 세제 혜택 외에 ‘민간기업 동반성장지수’ 평가 가점이 부여되도록 동반성장위원회와 협의하고 있습니다.”
▶농지에 태양광 시설이 급증하면서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는데요.
“농식품부는 유휴농지 등을 활용해 농가 소득 향상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태양광정책을 추진하고자 합니다. 태양광 부지는 비우량농지 위주로 활용하고 농업진흥구역은 보전하는 것을 기본방향으로 하고 있습니다. 수상 태양광 사업은 주민 동의를 받아 저수지의 본래 기능을 유지하는 조건하에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농업인 범위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농업인은 농업식품기본법에 따라 1000㎡ 이상 농지를 경영·경작하거나 수확물의 연 판매액이 120만원 이상이어야 하는 등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이를 현실에 맞게 기준을 재조정할 계획입니다. 또 법마다 농업인의 정의가 조금씩 다른 만큼 통일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농업회의소 법제화는 어떻게 추진되고 있습니까.
“기존 농업 기구 및 단체만으로는 농촌의 다양한 현장 의견을 수렴하고 조정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농업계를 대표하는 민관 협치 대의기구인 농업회의소 활성화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농업회의소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는 만큼 국회 및 농업인단체와 적극 협의해나가겠습니다.”
▶남북한 경협에서 농식품부와 산하기관인 산림청은 어떤 역할을 맡게 됩니까.
“남북은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에서 산림 분야 협력을 우선적으로 추진해나가기로 했습니다. 지난달 ‘제2차 산림분과회담’에서는 그 일환으로 남한이 이달 소나무재선충 방제에 필요한 약제를 북한에 제공하고, 내년 3월까지 공동방제를 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개호 장관은
고위공무원 출신 의원…농민 관련 법안만 100여 건 발의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공직 생활을 거쳐 19, 20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행정과 입법 경험을 두루 쌓았다. 1959년 전남 담양에서 출생해 금호고와 전남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행정고시 24회에 합격한 뒤 전라남도 행정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했다. 광양시 부시장, 목포시 부시장, 여수시 부시장, 전라남도 기획관리실장, 행정안전부 자치경찰기획단 단장 및 기업협력지원관, 전라남도 행정부지사 등을 역임했다. 2002년 전라남도 일선 공무원들로부터 ‘가장 존경하는 간부’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4년 이낙연 총리가 전남지사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공석이 된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 지역구에서 시행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2016년에는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20대 국회에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간사를 맡았다. 국회 농해수위에서는 농민 관련 법안만 100여 건을 발의하는 등 활발한 의정활동을 벌였다.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국가균형발전 특보단장으로 활동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해당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에서 경제2분과위원장을 지냈다. 이곳에서 농식품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미래창조과학부, 방송통신위원회, 국토교통부 등 관련 정책 수립을 총괄했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광주·전남지역 선거대책본부를 진두지휘하며 압승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초대 농식품부 장관으로 하마평이 나오기도 했다.
■약력
△1959년 전남 담양 출생
△광주 금호고 졸업
△전남대 경영학과 졸업
△행시 24회
△내무부 지방자치기획단 운영담당관
△전남 광양·목포 부시장
△전라남도 행정부지사
△19·20대 국회의원(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간사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