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율 20%의 암을 이겨낸 것을 보면 기초체력이 중요한 것 같다. 여러분도 건강할 때 건강관리를 해야 한다"
한국 영화계의 영원한 별, 신성일이 4일 새벽 폐암으로 별세했다. 한국 영화 역사와 발자취를 함께한 고인의 마지막 공식 활동은 지난달 초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이었다. 한국영화 회고전의 주인공으로 선정됐다.
그는 이 자리에서 폐암 3기 확진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인 사실을 언급하며 "의사가 5주에 가까운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 20일 휴식 시간 등을 가져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 이 자리에 있다. 의사도 놀랍다로 하더라"며 "앞으로도 건강하고 당당하게, 비루하지 않은 배우로 살겠다"고 말했다.
신성일은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후 전남의 한 요양병원에서 투병해왔다. 지난달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이어왔다. 이후 병세가 급격히 나빠지면서 전날 서울성모병원으로 옮겨졌다.
건강했던 그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는 팬들과 영화계 관계자들은 갑작스런 비보에 침통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신성일은 1960∼1970년대 최고 인기를 누린 배우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1960년 신상옥 감독·김승호 주연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이후 '맨발의 청춘'(1964년), '별들의 고향'(1974년), '겨울 여자'(1977년) 등 숱한 히트작을 남기며 독보적인 스타 자리에 올랐다.
출연작품 편수도 다른 사람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출연 영화 524편, 감독 4편, 제작 6편, 기획 1편 등 데뷔 이후 500편이 넘는 다작을 남겼다.
1963년 한 해에만 '청춘교실' 등 21편에 출연했으며, 1964년에는 '맨발의 청춘' 등 32편, 1965년 '흑맥' 등 34편, 1966년 '초우' 등 46편 영화에 출연했다.
'안개' 등 51편 영화에 출연한 1967년은 그의 일생에서 가장 많은 영화에 출연한 해였으니, 이해 제작된 한국 영화는 총 185편이었다.
명성만큼이나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1968년과 1990년 대종상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으며,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백상예술대상 남자최우수연기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대종상영화제 공로상, 부일영화상 공로상 등 수없이 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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