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문화살롱] "시를 읽으면 뭐가 좋은겨?"

입력 2018-11-01 18:48
고두현 논설위원·시인


[ 고두현 기자 ] 유네스코가 제정한 ‘세계 시(詩)의 날’은 3월21일이다. 1999년 파리 총회에서 인류의 언어와 사고 지평을 넓히고자 기념일로 정했다. 이날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춘분(春分)이다. 프랑스는 이날을 전후해 ‘시인들의 봄’ 축제를 보름 이상 펼친다. 시의 향연은 ‘책의 날’인 4월23일까지 이어진다.

우리나라는 1987년에 이미 ‘시의 날’을 11월1일로 정하고 선언문까지 발표했다. 최남선이 한국 최초의 신시(新詩)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를 국내 첫 월간지 《소년》 창간호에 발표한 1908년 11월1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올해도 ‘시의 날’인 어제 서울 등 주요 도시에서 ‘시 축제’가 펼쳐졌다. 주한프랑스문화원 옆에 있는 숭례문학당에서도 시와 노래가 어우러진 ‘시 읽는 퇴근길’ 북콘서트가 열렸다.

'시의 날' 새기는 네 가지 의미

시 축제 관객 중에는 의외로 중년들이 많았다. 중절모 차림의 나이 지긋한 남자가 물었다. “시를 읽으면 뭐가 좋은겨?” 시의 효용성에 관한 질문이었다. 어쩌면 시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기도 했다. 시는 무엇이며, 우리는 시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이에 관한 대답 중 하나가 ‘시의 날 선언문’에 있다. ‘시는 삶과 꿈을 가꾸는 언어의 집이다. 우리는 시로써 저마다의 가슴을 노래로 채워 막힘에는 열림을, 어둠에는 빛을, 끊어짐에는 이어짐을 있게 하는 슬기를 얻는다.’

여기에 더해 나름대로 ‘시 읽기의 유익함’을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본다. 첫째는 ‘몸과 마음을 춤추게 하는 리듬(운율)의 즐거움(樂)’이고, 둘째는 ‘마음속에 그려지는 시각적 회화의 이미지(像)’다. 셋째는 ‘시 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說)’이며, 넷째는 이들을 아우르는 ‘공감각적 상상력(想)’이다. 이 네 요소가 시를 읽을 때마다 우리를 즐겁게 하고, 꿈꾸게 하며, 호기심 천국으로 인도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잘 알다시피 시는 가장 짧은 문장으로 가장 긴 울림을 주는 문학 장르다. 함축과 생략, 비유와 상징의 묘미가 살아 있다. 인생의 물굽이를 헤쳐온 중년들에게는 삶의 근본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중년이란 인생의 정오를 지나 오후로 접어드는 시기다.

젊은 시절의 꿈은 어느덧 퇴색하고, 살아남기 위해 세상과 타협하며, 호르몬 변화로 감성까지 달라지는 나이. 그런 중년의 삶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힘이 시 속에 들어 있다.

가장 짧은 문장, 가장 긴 울림

인생 100세 시대를 맞이한 요즘 중년은 아직 ‘푸른 나이’다. 시 축제에서 만난 ‘중년 청춘’들이야말로 시의 가치와 효용으로 가슴 뛰는 삶을 다시 설계할 수 있는 주인공이다.

이들을 위해서는 우리나라 ‘시의 날’ 축제가 좀 더 생활밀착형으로 바뀌면 좋겠다. 프랑스 ‘시인들의 봄’은 ‘올해의 시’ 추천 작품을 우편엽서에 인쇄해 집과 학교, 직장으로 보내면서 시작한다. 시민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시를 적극적으로 나눈다.

행사 장소도 시골 작은 동네와 대도시, 공연장과 영화관, 카페 등 가리지 않는다. 나무에 시를 걸어두거나 계단에 시구를 붙이고 빨랫줄에 시를 걸기도 한다. 시에 멜로디를 입힌 노래에 영화화한 ‘시네 포엠’까지 축제의 흥을 돋운다.

이렇게 시를 즐기는 사회 분위기가 뒷받침된다면 우리나라 가을은 시 읽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서리 앉은 단풍이 봄꽃보다 붉다’는 당나라 시인 두목의 절구처럼 ‘봄꽃보다 붉은 가을 시 한 편에 마음까지 단풍 물드는’ 시기다. 그 속에서 ‘시 읽기의 네 가지 유익함’까지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더욱이 올해는 신시 110주년이다.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