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새로운 'KSP 한류'를 위해

입력 2018-11-01 18:45
백승진 < 유엔 서아시아경제사회위원회 경제정책관 >


유엔을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들은 여전히 한국을 개발도상국 그룹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자 세계 7대 수출대국이다. 싸이에 이어 방탄소년단(BTS)이 주도하고 있는 한류의 세계화는 우리가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서 국제사회 번영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몇 년 전 한국의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이 중남미에서 효과적인 개발협력사업으로 거듭나도록 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신문에 기고한 적이 있다. ‘한강의 기적’을 일군 우리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의 노하우를 중남미에 체계적으로 전수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장을 뛰면서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

필자가 접한 많은 개발도상국 지도자들의 경제정책에 대한 전문성은 우리에 못지않았다. 우리의 경제개발 계획 노하우, 새마을운동 경험 등의 전수만으로는 그들의 절박함에 응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한국의 치안 역량이다. 우리의 경제발전은 치안을 위한 치열한 노력, 민주적 질서의 틀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치안은 한 나라의 경제를 지탱하는 기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동은 ‘아랍의 봄’ 이후 정정 불안이 장기화되고 있다. 이는 사회개혁, 정치발전 및 민주화의 저해 요인이다. 지속 가능한 경제개발도 불가능하다. 즉 분쟁·취약국가에선 치안이 담보되지 않는 한 한국의 KSP가 통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한국은 외교부, 경찰청 등 관련 기관 간 협업 형태로 국가별 치안 상황 개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은 시작 단계다. 반면 여러 역내 기구의 국가사무소 또는 유엔 같은 국제기구 차원의 치안 상황 개선 관련 프로젝트는 오래전부터 추진돼 오고 있다. 우리는 이 분야에서 영향력을 높일 수 있다. 산업화·민주화를 압축적으로 경험하면서 밀도 높은 치안 역량을 축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제발전 경험을 집대성한 데이터베이스인 ‘K-Developedia’를 구축했고 이를 모듈화해 최근 온라인공개강좌(MOOC)도 선보였다. 잘 짜인 경제발전 경험의 판에 치안 역량을 연계시킨다면 치안 관련 국제개발협력프로젝트를 선도할 수 있다. 이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KSP 한류’를 창조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