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인문학
김동훈 지음 / 민음사 / 486쪽│1만8000원
[ 은정진 기자 ] 수백만원짜리 프라다 가방을 들고, 까르띠에 시계를 차고, 몽블랑 만년필로 글씨를 쓰는 건 사치일까. 그 브랜드 가방은 어떤 이유로 살까.
서양사학자인 김동훈 씨가 낸 《브랜드 인문학》은 우리가 아는 수많은 브랜드가 소비자의 무의식적 욕구 속에서 어떤 철학과 정체성을 만들어냈는지 탐구한 책이다. 그 브랜드의 정체성과 이를 표현한 갖가지 이미지 및 감각을 통해 우리는 그 브랜드를 사는 게 ‘사치’인지 ‘적절한 소비’인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명품을 불필요하게 사는 것은 사치지만 필요한 것이어서 산다면 그건 ‘취향’이 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신통치 않던 브랜드 프라다를 명품 브랜드로 탈바꿈시킨 사람은 창업자인 마리오 프라다의 손녀이자 극단적 페미니스트인 미우치아 프라다였다. 기존 패션의 경향이 의존적 여성상을 생산한다고 본 미우치아는 당시 유행인 육감적 여성의 몸을 드러내는 패션 대신 우아함과 함께 여성의 자유로움을 극대화할 단순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과감하게 선보였다. ‘여성스러운 나’가 아니라 ‘여성인 나’ 자체를 표현하기 위한 디자인 철학으로 프라다는 더 이상 사치품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입는 ‘필요품’이 됐다. 저자는 “사회적 편견에 고착된 정체성을 버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할 때 브랜드는 ‘필요’가 된다”고 말한다.
일본 패션디자이너 미야케 이세이는 균형과 절제, 조화를 특징으로 몸에 딱 맞게 재단해 인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서양 의복의 고전주의적 전통이 몸을 구속한다고 여겼다. 구속에서 벗어나 파격과 변화를 바탕으로 한 바로크 문화를 대입해 몸에 완전한 자유와 움직임,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길은 재단을 최소화하는 것뿐이라는 결론에 이른 그는 바로크 예술의 중요한 주제였던 주름을 떠올린다. 사람의 몸에 따라 늘거나 줄기도 하고 접히거나 펴지는 살갗처럼 옷도 언제나 변할 수 있는 유연함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아코디언처럼 늘어나고 줄어드는 주름옷 브랜드인 플리츠플리즈는 이렇게 탄생했다.
32가지 각각의 브랜드 속에 담긴 정체성의 비밀을 아리스토텔레스, 질 들뢰즈 등 수많은 철학자의 인문학적 관점을 기반으로 설명한 저자는 “내 안의 잠재력은 감각이 자극받을 때 능력으로 현실화된다”고 말한다. 브랜드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나 자신의 정체성을 대신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매체이자 감각을 자극하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이 브랜드들이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나의 어떤 감각을 깨우쳐주고 내 어떤 취향을 만족시켜주는지 살펴보는 것도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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