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공직사회 떠나는 3040 엘리트 관료들
민간 취업제한 범위 확대되는
고위공무원 되기전 '결단' 많아
일방적 지시·인사적체 등도 불만
기재부·산업부 인력 이탈 심각
올들어 4급이상 17명 이직 신청
세무·조사전문가 연봉 2배 받기도
[ 김우섭/서민준/이수빈 기자 ]
국세청에서 12년간 근무한 A모 주무관(6급)은 사표를 내고 지난해 9월 국내 D증권사의 본사 세무팀장으로 이직했다. 자산관리(WM) 분야를 키우려는 증권사와 민간 기업으로 옮기고 싶은 A팀장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전 직장보다 두 배 이상 높은 1억5000만원의 연봉도 매력적이었다. A팀장은 “틀에 박힌 업무와 민원인을 압박하는 ‘악역’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입사 1년 만에 능력을 인정받아 더 많은 연봉을 받고 최근 국내 3대 회계법인 중 한 곳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공무원들이 30~40대의 젊은 나이에 전문성을 살려 민간 기업으로 옮기는 사례가 늘고 있다. 경제 정책 수립과 이론, 실무 등에 전문성이 높은 경제 부처와 국세청·경찰청 공무원의 민간 기업 이직이 잇따르고 있다. 청와대에서 내려오는 일방적인 업무 지시와 인사 적체, 고위직에 오를수록 어려워지는 민간 이직 등에 불만이 쌓인 결과다.
고공단 승진 직전에 이직 ‘러시’
26일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민간 기업 이직을 신청한 공무원은 지난 8월 말 기준 712명으로 집계됐다. 작년 1년간 신청자(752명)의 94.6%에 달한다. 이 추세가 이어지면 재취업 심사 신청자 수가 처음으로 올해 연간 1000명을 넘어선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4급 이상 공무원과 7급 이상 국세청·검찰·경찰 공무원 등은 퇴직 후 재취업을 원할 경우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퇴직 직전 업무와 관련성이 있는 곳에는 취업할 수 없다.
경제 부처의 인력 이탈이 특히 심각하다. 대표적으로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에선 올 들어 17명의 4급 이상 공무원이 이직을 신청했다. 이미 지난해 신청자 수(16명)를 넘어섰다. 지난해 8월엔 강길성 기재부 재정건전성관리 과장이 LG전자 통상담당 상무로 자리를 옮겼다. 비슷한 시기 국제통화기금(IMF)에 파견 갔다 돌아온 나석권 전 기재부 국장은 SK경영경제연구소로, 이달부턴 김정관 전 부총리 정책보좌실장(국장)이 두산그룹의 사내 경제연구소 계열사인 디엘아이(DLI)의 전략지원실 부사장으로 옮겼다. 김 부사장은 기재부 내 정책라인의 ‘에이스’로 같은 기수에서도 선두주자로 꼽혔다.
국장급 고위공무원(1~2급)이 되기 직전 ‘결단’을 내리는 사례도 적지 않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고위공무원이 될 경우 본인의 업무 영업 이외에도 취업할 수 없는 분야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 중앙부처 과장은 “과장이 되면 주도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등 보람과 자부심이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경제 부처 과장급 공무원 대부분이 이맘때 이직을 한 번씩 고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동적 관료 사회도 한 요인
정책 생산을 주도하지 못하고 청와대나 정치권이 ‘하달’한 업무만 수행하는 수동적 관료사회 분위기도 한 요인이다. 다른 국장급 공무원은 “중앙부처 공무원은 국가 정책을 이끈다는 자부심 하나로 금전적 손해와 격무를 참고 있다”며 “최근엔 주도적으로 정책을 만들어도 ‘왜 나서느냐’는 비판만 돌아온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정치인 출신 장관이 크게 늘어난 점이 이런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 정부에서 현역 국회의원이 장관을 맡고 있거나 맡았던 부처는 8곳이다. 전체 장관 임명 건수(24건)의 33.3%에 달한다. 노무현 정부에선 현역 국회의원이 장관을 맡은 사례가 13.2%(10명)였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도 각각 22.4%(11명)와 23.3%(10명)에 불과했다. 한 국장급 공무원은 “정권 차원에서 정해진 방향에 따라 일만 하는 부속품 같다는 답답함이 있다”고 토로했다.
국세청 등 관련 분야 전문성이 있는 공무원의 이직도 줄을 잇고 있다. ‘철밥통’이자 ‘갑(甲)’으로 군림하며 정년을 꽉 채웠던 공무원 선배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국세청에서 10년간 근무한 뒤 우리은행의 WM그룹 차장으로 옮긴 B씨는 “단순 행정 업무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민간 기업들도 전문성 있는 공무원을 적극 스카우트하고 있다. 금융사들은 국세청 출신 세무 전문가나 경찰 출신 조사 전문가 등에게 직전 직장 연봉의 두 배 정도를 제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경찰대 출신 로펌 변호사는 “퇴직 후 공무원연금으로 노후에 보상을 받는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젊은 공무원들은 연금마저 제대로 받지 못할 것이란 불만이 있다”고 전했다.
김우섭/서민준/이수빈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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