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풀·원격의료·숙박공유…기득권 반대에 규제완화 손도 못댔다

입력 2018-10-24 17:35
혁신성장·일자리 창출 방안

정부, 카풀 등 허용 추진했지만 與 반대로 막판 제외
숙박공유·원격의료 등도 원론적 내용만 담아
공유업계, 공무원 복지부동에 "속 터진다"


[ 이태훈/성수영 기자 ] 정부는 24일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지원방안’을 내놓으며 “핵심규제 혁신을 추진해 일자리 창출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승차공유(카풀), 도심 내 숙박공유, 원격의료 등 현안들의 규제완화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거나 “향후 논의하겠다”는 정도로 넘어갔다. 이들 사업은 시장 수요가 많음에도 택시 운전기사, 숙박업체, 의사 등 기득권의 반대로 허용이 안되고 있다. 카풀 등 일부 서비스의 경우 정부는 허용을 추진했으나 여당의 반대로 막판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여당에 발목 잡힌 카풀

정부가 이날 발표한 공유경제 확대 대책에는 ‘카풀’이나 ‘승차공유’란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신(新)교통서비스를 활성화하되 기존 운수업계 경쟁력 강화 등 상생방안 마련 병행”이라고만 돼 있다.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은 신교통서비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예를 들어 설명하면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있을 수 있어 여기서 더 나아가 설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고 차관은 “연내에 공유경제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겠다”고만 답했고 그 대상이 카풀인지는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최근 카풀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하고 운전자를 모집하자 지난 18일 전국 택시 기사 6만여 명(주최 측 추산)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총파업을 벌이는 등 택시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같은 날 기재부 국정감사에서 카풀 사업에 대해 “(반대가 있어도) 정면돌파하면서 규제 개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번 대책에 카풀 사업 허용이 포함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정부는 카풀 허용을 추진했으나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반대가 심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책을 사전 설명하기 위해 지난 23일 한 브리핑이 당초 오후 2시에서 4시로 연기됐는데 당일 당정협의에서 카풀을 둘러싼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조직력이 강한 택시 운전기사를 적으로 돌리는 것은 정치인들에겐 큰 부담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료들 폭탄 돌리기 그만하라”

숙박공유 등 다른 규제 혁신안도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현재 외국인은 도심에서 숙박공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내국인은 안 된다. 호텔 모텔 등 숙박업계가 반대하고 있어서다.

정부는 이날 대책에 “숙박공유 허용범위 확대와 투숙객 안전 확보 등 제도정비 병행”이라는 원론적 내용만 담았다. 정부는 작년 말 발표한 ‘2018년 경제정책방향’에서도 숙박공유를 확대 허용하겠다고 했는데 거기서 더 진전된 내용은 없다.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도 이번 대책에 포함되지 않았다. 의사가 다른 의사나 간호사와 원격으로 협진(協診)을 할 수 있게 추진하겠다는 내용만 담겼다.

김 부총리는 이날 대책 발표 뒤 공유경제 업계 대표들을 만났다. 숙박공유 업체 코자자의 조산구 대표는 “7년간 사업을 하면서 관련 법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가슴이 터지는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게임업체인 블루홀 의장인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은 “공무원은 1~2년 뒤 보직이 바뀌니 ‘내가 있을 때만 문제가 없으면 된다’는 자세를 견지하는 이들이 있다”며 “언젠가는 후배 관료가 해야 한다.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폭탄 돌리기’를 그만했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돈 풀기 나섰지만…

정부는 민간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총 15조원 규모의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하기로 했다. 중소·중견기업이 시설투자를 하면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대출이나 출자를 통해 비용의 80% 정도를 지원한다.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에는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이 총 1조원 규모의 보증을 제공한다. 조선 기자재업체에도 신·기보와 무역보험공사가 총 3000억원 규모의 보증을 지원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 규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상위권”이라며 “지원을 늘려도 규제개혁이 동반되지 않으면 경쟁력 없는 기업의 수명만 연장하는 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부 자금으로 연명하는 기존 기업이 많아지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춘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태훈/성수영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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