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유치원 비리에 뿔난 엄마들
주말 보육 정상화 위한 집회 개최
국민청원 게시글도 수십건 올라와
정치적 영향력 큰 사립유치원
국공립 취원율 40%로 확대 방침에
한유총, '집단휴업 카드'로 저지
"사립유치원 조직적 반발에 발목"
[ 김동윤 기자 ]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21일 당·정협의를 통해 사립유치원의 회계비리 근절을 위한 종합대책
마련에 나선 가운데 학부모 사이에선 “국공립유치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사립유치원 회계비리의 사후적 감사와 처벌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국공립유치원을 대폭 늘려 문제 발생 소지를 원천차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정부의 국공립유치원 확대 정책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선례를 감안하면 이번에도 정부가 획기적인 대안을 내놓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학부모들 “국공립유치원 늘려라”
주말인 20~21일 수도권 지역에선 사립유치원 회계비리에 분노한 학부모들의 집회가 잇달아 열렸다. 20일에는 서울시청 인근에서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 주최로 ‘유아보육·보육정상화를 위한 모두의 집회’가 열렸다. 집회 참석자들은 유치원 비리 교육당국 책임자 처벌, 국가교육회계시스템 ‘에듀파인’ 무조건 도입, 비리 유치원 퇴출과 함께 국공립 단설 유치원 확충을 요구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튿날인 21일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에서 ‘동탄유치원 비상대책위원회’가 개최한 집회에서도 학부모들은 “국공립유치원을 확충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에 참석한 한 학부모는 “사립유치원 비리와 관련해 대대적인 감사에 들어간다고 하지만 감사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실효성이 있을지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며 “국공립유치원을 늘려 부모가 안심하고 자녀를 보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달라”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국공립유치원을 늘려달라는 게시물이 수십 건 올라왔다.
정부는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공립유치원 확대를 추진해왔다. 노무현 정부 때는 ‘유아교육발전 5개년 계획’을, 이명박 정부 때는 ‘유아교육 선진화 계획’을 수립해 추진했다. 박근혜 정부 때는 ‘유아교육발전 5개년 계획’을 내놨다. 이때마다 정부는 국공립유치원 취원율을 높여나가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학부모의 수요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전국 국공립유치원 취원율은 25.5%(2018년 기준)에 불과하다.
◆사립유치원 반발에 발목 잡힌 정부
교육당국은 국공립유치원 확충 속도가 더딘 이유로 부지 매입과 예산 문제를 꼽고 있다. 국공립 단설 유치원을 신설하는 데 100억원 안팎의 예산(서울지역 기준)이 필요한 데다 대도시에선 원아들의 접근성이 양호한 부지를 찾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교육계 인사들은 그러나 가장 큰 이유로 ‘사립유치원의 조직적인 반발’을 꼽았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예산과 부지 확보의 어려움은 사실 부차적인 문제”라며 “사립유치원의 막강한 지역사회 영향력 때문에 교육당국과 정치인들이 국공립유치원 확대를 밀어붙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작년 9월 ‘2022년까지 국공립유치원 취원율을 40%까지 끌어 올리겠다’는 계획을 마련하자 사립유치원 연합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는 ‘집단휴업’ 카드로 총력 저지에 나섰다. 한유총은 “사립유치원 지원 확대를 검토하겠다”는 교육부의 약속을 받고서야 집단휴업을 철회했다. 앞서 작년 7월에는 서울교육청과 대전교육청이 국공립유치원 확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정책 세미나를 열려고 했지만,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현장에 난입해 무산되기도 했다. 한 국공립유치원 관계자는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안철수 후보가 ‘국공립 단설 유치원 신설을 자제하겠다’고 발언한 것은 사립유치원의 정치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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