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택시 파업에 無대응…한국당 유치원 비리에 논평 한 줄 안내

입력 2018-10-19 17:53
이익단체 실력행사에 與도 野도 '눈치보기'

與 '카풀 대책 TF' 꾸렸지만
일부 의원 "기사들 생존권 문제"
노골적인 택시노조 편들기도

유치원 비리에 눈 감은 한국당
채용비리에 목소리 높이면서
사립유치원 비리 언급도 안해

의원들 '표밭' 의식하나
"이익·직능단체 회비 걷어
전방위 로비한 것도 원인"


[ 박종필/배정철 기자 ] 정치권이 보편적인 국민 여론보다 특정 이익집단이나 직능단체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는 지적이 강하게 일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채용 비리 의혹 건에는 자유한국당 등 야당을 중심으로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까지 주장하면서 정작 시민 이익과 직결된 카풀(승차공유 서비스) 도입, 사립유치원 회계 비리 등의 사안에 대해서는 이해관계에 따라 입을 다물고 있어서다. 택시업계, 사립유치원 원장 등 소위 힘 센 직능단체의 ‘표심’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勞 출신 정치인 “카풀 도입 반대”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1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카카오가 추진 중인 카풀은 언뜻 보면 좋은 서비스 같지만 50만 택시운전 기사들에게는 생존권이 걸린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택시요금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이라며 “택시노동자 소득이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정부가 카풀 도입 추진을 재고해달라”고 말했다. 이 최고위원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출신의 노동계 인사다.

정치권 인사는 “노동계 출신 인사의 개인 소신이지만 집권여당의 최고위원이 ‘택시업계 편들기’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야 모두 신산업 발전을 위해 규제개혁을 외치고 시민들도 출퇴근과 심야시간 택시 이용 불편 때문에 카풀 찬성이 높은데 막상 노동계가 실력 행사에 나서니 모두 발을 빼고 있다”고 했다.

개별 정치인들도 카풀에 대해 “중재안을 찾아보자”는 식의 원론적 입장이거나 일부는 택시업계 옹호 발언을 쏟아내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민주당은 카풀 대책 태스크포스(TF)까지 꾸려 해결책을 찾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지만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다. TF 위원장을 맡은 전현희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카풀에 대한 당의 입장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택시기사 단체와 공유경제 산업 둘 다 중요하기 때문에 접점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전날에는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택시기사 단체들의 집회가 열렸다. 그러자 일부 정치인들은 택시업계 편들기를 더 노골화했다. 전국택시노조 위원장 출신인 문진국 한국당 의원은 “경제가 어렵고 물가가 오르는데 정부는 또 카풀 앱(응용프로그램)을 만든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동지들을 위해 (카풀 도입 저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경진 민주평화당 의원도 입장문을 내고 “택시야말로 대표적인 골목 상권”이라며 “카카오가 영세사업자들의 생계를 위협했다”고 말했다.

◆사립유치원 ‘적반하장’에도 침묵

사립유치원 원장의 횡령 사건도 ‘강자에게는 약한’ 정치권의 행태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박용진 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를 통해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을 실명 공개하자 사립유치원 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는 박 의원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준비하는 등 강경 대응으로 맞서면서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였다.

국회 관계자는 “민간 기업이 그랬다면 여야 할 것 없이 당장 국정감사와 현안질의 요구를 하며 압박에 나섰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서영교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이번 국감에서 민주당의 가장 큰 성과”라며 박 의원을 치켜세웠지만 같은 당 다른 동료 의원조차 적극적으로 박 의원을 감싸주지 못하는 분위기다.

야당은 아예 입을 다물고 있다. 바른미래당이 지난 15일 “강력한 처벌로 유아 교육현장 비리 근절을 촉구한다”는 논평을 한 차례 냈을 뿐, 한국당은 지금까지 논평 한 줄 내지 않고 있다. 한유총은 5일 국회에서 열린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국회 정책 토론회’를 물리력으로 저지하며 위력을 과시했으나 이후 여론의 거센 후폭풍에 직면했다.

정치권은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총대’를 메는데도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지역에서 영향력이 큰 이익단체의 입김을 우려해서다. 교육위 소속 한 의원실 보좌관은 “정치인들은 표로 먹고 사는데 지역구에 실력 행사를 하는 것은 물론 한유총이 거둬들인 회비로 정치권에 전방위 입법로비를 하는 등 협박과 회유를 거듭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여당 의원조차 박 의원을 거들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력 행사에 그치지 않고 영유아 교육기관장이 정치권에 직행하기도 한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광역·기초의원 중 사립유치원 원장(설립자) 출신은 14명, 민간 어린이집 원장 출신은 47명에 달했다.

박종필/배정철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