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교황 면담…北의 초청 의사 전달
문 대통령 "남북 화해 위한 베드로성당 미사에 감사"
교황 "판문점이 한반도 평화 상징 될 것" 화답
[ 손성태 기자 ]
18일 이뤄진 문재인 대통령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단독 면담은 이번 유럽 순방의 최대 하이라이트로 평가된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교황의 지지를 확인받은 데 이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교황 방북 초청 의사도 직접 전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문 대통령 요청에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답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교황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여덟 번째다. 문 대통령은 작년 5월 취임 직후 교황청에 특사를 파견한 바 있다.
교황의 역사적인 첫 방북이 성사되기까지는 경호와 의전 등 절차적 문제 외에도 북한 인권 문제와 비핵화 조치 이행 등 여러 가지 변수가 남아 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반도 평화에 지지 의사를 밝히고, 방북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만도 이번 문 대통령 유럽 순방의 최대 성과로 평가된다. 2000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2세를 평양에 초청했으나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이날 낮 12시 교황궁 베드로광장을 가로질러 캄파네문을 통과해 교황청 경호경찰 선도차 안내에 따라 교황궁에 도착했다. 문 대통령은 교황궁 입구에서 영접 나온 간스바인 궁정장관 등 교황의장단과 인사를 나눴다. 이어 문 대통령은 트로네토홀에서 교황과 첫 인사를 한 데 이어 교황 서재로 함께 이동해 기념촬영한 뒤 통역만 배석한 채 면담에 들어갔다.
문 대통령은 교황을 만난 자리에서 한·교황청 관계 발전, 한반도 평화 정착, 주요 국제 현안 등 공동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문 대통령은 남북한 정상회담 결과 등 최근 한반도 정세 진전에 관해 설명하면서 “교황 성하께서 보내준 강력한 성원과 지지, 축복과 기도가 큰 도움이 됐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어 “전날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 미사’에서 평화에 대한 갈구와 간절함이 한데 모였다는 생각과 함께 한반도에 평화가 이뤄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대통령 말씀대로 이제 판문점이 한반도 평화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곧바로 “제 생각에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셔야 할 것 같다”며 “우리의 기도가 정말 강렬했고 주님께서 우리 기도를 꼭 들어주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계속 기도하겠다”며 “그동안 대통령께서 북한 지도자를 만나 큰 걸음을 떼셨는데 앞으로도 계속 잘될 것”이라고 축복했다.
문 대통령은 한 시간여 면담을 끝낸 후 교황에게 한국 측 수행원들을 소개하고 선물을 전달했다. 이날 교황 면담에 문 대통령을 수행한 인사는 강경화 외교부·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백만 주교황청 대사 내외, 청와대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남관표 안보실 2차장,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윤종원 경제수석, 신재현 외교정책비서관, 몰타기사단 회장인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이었다. 이날 한국 측 통역은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에 파견 근무하면서 교황청립 토마스아퀴나스대 교의신학 박사학위 과정에 있는 대전교구 소속 한현택 신부가 맡았다.
문 대통령은 교황 면담에 앞서 전날 주교황청 한국대사관저에서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과 만찬 회담을 하고 올해 55주년을 맞은 한·교황청 관계를 더욱 심화·발전시켜 나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문 대통령은 파롤린 국무원장에게 “강력한 적대 관계 속에서 평화를 만들어 내는 일은 용기가 있어야 하는데 전날 미사가 우리에게 큰 용기를 줬다”며 “제가 베드로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거기서 연설까지 한 것은 꿈만 같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판문점에서 군인과 무기를 철수하고 지뢰를 제거하고 있다”며 “이제 판문점은 한반도 평화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측은 문 대통령의 교황청 방문을 계기로 한국 정부와 교황청이 ‘한국·교황청 관계사 발굴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한·교황청 관계사 발굴사업은 교황청의 바티칸 도서관·비밀문서고·인류복음화성 수장고에 보관된 양측 관계사 자료를 발굴·정리·보존·연구하는 사업으로, 내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진행된다. 문 대통령과 파롤린 국무원장은 사료 발굴과 디지털화, 학술 세미나, 2023년 수교 60주년 기념 전시회 개최 등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했다.
로마=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